[기자의 눈]심규선/일본의 북한 불신

  • 입력 2000년 8월 22일 18시 52분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이 21일 도쿄(東京) 프레스센터에서 일본기자들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문화관광이라는 ‘평범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외국 장관급 인사가 프레스센터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가진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날 회견은 문화산업 투자설명회 참석차 방일한 그에게 일본기자클럽이 요청해서 이뤄졌다. 기자클럽은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한 밀사로서 두 차례나 북한을 방문해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만난 박장관의 ‘상품성’에 주목했을 것이다. 회견장에는 일본 유수 언론사의 기자 120여명이 참석했다.

처음에는 사회자가 의례적으로 그의 ‘본업’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한일 양국의 문화 교류 전망에 대해 얘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질문은 곧바로 북한의 미사일개발 문제로 넘어갔다. 김국방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에게 했다는 조건부 미사일개발 유보 발언의 진위를 묻는 질문이 나왔다.

“북한은 여전히 독재 체제인데 남북 교류가 진전되면 혹시 북한이 붕괴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지난해 서해에서 있었던 남북 함정의 교전에 대해서 북한측이 사죄나 유감 표명을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국방위원장에 대한 평가가 갑자기 좋아졌는데 과연 김국방위원장은 믿을 만한 사람인가라는 질문도 빠지지 않았다.

북한에 관한 질문뿐만이 아니다. 북―일 수교 교섭차 도쿄에 온 북한대표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냐, 한국 언론사의 편집국장 인사에 개입하고 반미 데모에 관한 보도를 통제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진상이 무엇이냐는 질문도 나왔다.

박장관의 답변은 이미 알려진 내용이나 원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회견의 ‘주인공’은 답변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북한에 대한 일본의 뿌리깊은 불신과 의혹이 모든 질문에 배어 있었다. 동시에 변화에서 소외된 일본의 근심도 들어 있었다.

심규선<도쿄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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