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준석/월북가족의 思父曲

  • 입력 2000년 8월 13일 23시 37분


상봉의 부푼 기대를 안고 남북을 오가는 200가족의 사연이 연일 언론에 소개되는 현실의 뒤안길에는 이 ‘축제’를 쓸쓸히 지켜봐야만 하는 이산가족이 훨씬 많다.

이번 남북이산가족상봉단에 포함되지 못한 이예행씨(53·서울 송파구 가락동)는 월북한 아버지를 그리는 사연을 13일 동아일보 인터넷신문인 동아닷컴 게시판에 띄워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저도 이번에 상봉신청을 했지만 월북자 가족이라 순위가 밀린다더군요. 연좌제 때문에 그동안 겪었던 설움을 아버지를 만나면 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씨의 아버지 이재곤씨(81)는 북한과학원 수학연구소 원사(박사보다 한 등급 높은 학위)인 수학계의 거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팔순잔치를 열어 줄 정도로 입지가 확고하다. 46년 월북 전엔 서울대 교수였다.

생사조차 알 수 없던 부친의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90년. 부친과 함께 월북한 역사학자 김석형원사가 일본의 한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어렵사리 부친의 소식을 들었다. 그 뒤 미국에 사는 친구들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병석의 어머니 김애운씨(79)도 ‘이제 곧 만날 수 있겠구나’하는 희망으로 기력을 지탱할 수 있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북한에 혈육이 없어 안보내주는 건지, 신변에 이상이 생긴 건지…. 불가피한 이유가 아니라면 우리를 외면할 분이 아닌데….”

이씨는 이번엔 부친을 만날 수 없지만 서울에 오는 조주경 김일성대 교수(68·수학자)를 통해서라도 안부를 전할 수 없겠느냐고 하소연했다. “편지를 전하고 싶지만 통제가 심하겠죠.”

이씨의 사부곡(思父曲)이 기쁨의 노래가 될 날은 언제쯤일까. 이처럼 가슴에 묻어두었던 얼굴들을 대하지 못하는 훨씬 더 많은 이산가족의 아픔을 우리가 혹시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볼 일이다.

<김준석기자>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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