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은희준/남북 측정기준부터 통일을

  • 입력 2000년 8월 6일 18시 53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교류가 활발해지면 정부의 대북정책의 초점은 남북 동질성 회복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동질성 회복 과제 가운데 국가표준사업은 매우 중요하고 기본적이며 원천적인 협력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표준은 구성원간의 기본적인 측정 기준을 일치시킴으로써 산업활동을 유지하는 골격이기 때문이다.

성문표준과 함께 국가표준의 큰 틀을 이루는 측정표준은 산업활동에 수반되는 측정의 정밀 정확도를 유지해 제품과 데이터의 호환성을 보장하는 핵심수단이다.

국제화 시대에는 국가간에 상호 인정된 측정표준이 없으면 원활한 문물교류와 정보교환이 이뤄질 수 없다. 남북간 교류에서 측정표준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남북협력이 본격화되면서 대상분야가 정밀전자와 기계 등 첨단분야로 확대될 때 남북한에 있는 여러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부품과 재료의 호환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인 문제로 대두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북한에서 생산되는 부품과 완제품이 세계시장으로 수출되거나 외국 부품을 사용한다고 할 때 북한 내 측정표준을 국제표준에 일치시키는 것은 절실한 문제로 대두된다. 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계획중인 북한 서해공단에 국가교정기관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표준센터를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북한 표준기관의 국제표준활동이 미미한 것을 감안할 때 서해공단에 표준센터를 세우는 것은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국제규범에 맞는 표준센터를 세우는 데 있어서는 그동안의 활동을 감안해 보면 북한이 독자적으로 이 센터를 설치 운영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적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측정표준 대표기관으로서 관련 국제기구에서의 대표권을 행사해 온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이 센터 건설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표준원은 국내 산업공단을 중심으로 지정 운용되고 있는 169개의 국가교정기관에 기술을 제공하고 표준을 유지하는 최고기관으로 각 지역의 산업체가 계측기기를 정밀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심 역할을 해왔다.

마침 표준원은 서해공단 표준센터의 단계적 설치 운영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이 표준센터는 서해공단 외에 북한 내에 설치될 다른 공단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으로 건설되는 신포 원자력 발전소를 지원하기 위한 방사선과 화학분야의 측정표준도 포함하도록 돼 있다. 서해공단의 표준센터는 궁극적으로 남북 국가표준체계의 통일로 이어지는 데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가표준의 효과는 산업활동에 그치지 않고 과학기술 교육 의료보건 환경 국방 등 한 국가의 모든 경제 사회 활동에서 필수적 요소로 작용한다. 따라서 국가표준은 분단된 조국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밑거름이다. 정부는 공단조성 등 가시적 효과에만 급급하지 말고 진정한 남북의 연결고리가 되는 기반을 조성하는 데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은희준(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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