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걱정되는 기술무역적자

  • 입력 2000년 7월 31일 19시 05분


우리나라의 해외기술 의존도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80년대 20%에서 90년대 중반 기술개발 노력으로 한때 11%선까지 낮아졌던 해외의존도가 최근 들어 다시 23%까지 치솟은 것으로 한국은행 조사결과 나타났다. 물론 근년 들어 전자분야 등의 첨단기술 도입이 증가한 이유도 있지만 어쨌든 이런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 우리나라 산업기술의 해외 종속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처럼 기술의 해외의존도가 높아지면서 96년 이후 우리나라는 매년 20억달러가 넘는 기술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 12위권의 무역대국인 우리나라가 산업기술 수준은 22위에 머물고 기술개발력에서는 미국을 100으로 할 때 일본이 113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27에 불과해 국내 산업기술이 얼마나 ‘속 빈 강정’ 수준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산업의 모습이 이렇게 초라한데 요즘 정부가 경제정책을 수립하면서 얼마나 산업분야를 고려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금융기관의 채권확보에만 몰두하고 있는 금융관련 경제부처들의 기세에 눌려 산업담당 부처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흡사 금융이 경제정책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가운데 그렇게 흔히 열리던 청와대의 산업경쟁력 강화회의 같은 것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이 정부 들어 유난히 산업정책이 한참 뒷전으로 밀린 느낌이다.

물론 97년 환란의 한 축에는 낙후한 금융산업이 있었고 이에 따라 금융구조조정이 화급히 요구되는 현안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근본적으로 위기를 벗어나려면 산업기술 향상을 통한 경쟁력 제고 또한 금융구조조정 못지 않게 중요하다. 산업기술은 우리나라가 장기적으로 먹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90년도부터 시작된 무역적자가 8년 동안 누적돼 일어난 것이 외환위기였다는 것을 이 시점에서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기술도입료 지출로 생기는 무역적자 규모가 확대되는 것 그 자체도 문제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부가 산업기술과 이를 바탕으로 한 수출정책을 소홀히 한다면 무역수지 전체가 한순간에 적자로 곤두박질하고 그 결과 외환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경시 풍조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경제는 금융과 실물 양 축이 균형을 이루며 발전해야 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정부가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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