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핼로란 칼럼]클린턴의 아시아 '홀대'

  • 입력 2000년 7월 25일 19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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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지난주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선진8개국(G8) 정상회의에서 보여준 모습은 아시아에 대한 그의 태도와 정책을 잘 드러냈다. 결론부터 말하면 클린턴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아시아에 대한 뜨거운 관심도 없었으며 적절한 대(對)아시아 정책도 펼치지 않았다.

클린턴은 모리 요시로(森喜朗)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취소했고 오키나와에 하루 늦게 도착해 떠날 때는 예정보다 반나절 일찍 귀국길에 올랐다.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중동 평화회담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같은 클린턴의 거만한 태도는 일본 지도자들에게 굴욕감을 안겨 줬을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클린턴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언론의 자유를 강조했다고 한다. 이 문제가 중요하기는 하나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긴급한 현안은 아니다. 미국의 유럽 우방국가들은 클린턴이 유럽을 아랍과 이스라엘 문제보다 덜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인상을 갖게 됐을 것이다.

뉴욕과 워싱턴에는 클린턴이 왜 그처럼 중동 평화회담을 중시하는지에 대해 몇가지 분석이 나돌고 있다.

먼저 뉴욕주 상원의원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부인 힐러리여사를 돕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뉴욕주는 유대인 유권자들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다. 둘째 클린턴은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게 압력을 넣기 위해 G8 정상회의 일정을 중동평화회담 합의 도출 시한으로 삼았던 것이다. 클린턴은 자신의 잔여 임기 동안 역사적인 성과를 남기고 싶기도 할 것이다.

클린턴의 임기 내내 그의 아시아정책은 ‘재앙’에 가까운 것이었다. 아시아 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미국과) 북한이나 베트남의 관계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인도 파키스탄 등과의 관계는 오히려 악화됐다.

한국의 경우 클린턴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열렬하게 지지해 왔다. 이는 한반도에서의 최우선 목표는 전쟁 발발을 막는 것이라는 자신의 정책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김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북한 국방위원장이 만났을 때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불행하게도 미국 대선에서 앨 고어 부통령이 당선되건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당선되건 미국의 대(對)아시아 정책은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고어는 자신이 아시아 등에 대한 외교정책에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부시 역시 외교 또는 안보담당 보좌관들이 아시아에 다소 관심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샘 넌 전 상원의원과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 민주당과 공화당 출신의 유력한 전략 전문가들은 최근 한 보고서에서 “미국은 정책적 목표를 잃고 있으며 최근 수년간 대외정책은 혼란 그 자체였다”고 주장했다. 이는 클린턴을 겨냥한 것이었다.

클린턴과는 대조적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베이징과 평양 방문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일찌감치 오키나와에 도착했다. 푸틴과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이 아시아와 전세계에서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서로 공조키로 약속했다. 푸틴은 또 10년 가까이 끊어졌던 북한과의 관계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유럽연합(EU)의 외교안보정책을 입안하는 책임자인 하비에르 솔라나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은 지난주 안보문제 협의를 위해 싱가포르 태국 일본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에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중심 역할을 맡고 있는 중요한 나라들이 많다”고 말했다.

외교정책은 궁극적으로 국내 정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마련이다. 미국은 클린턴대통령과 의회의 오랜 갈등이 클린턴의 아시아정책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다행히 1977년 로버트 버드 민주당 상원의원 이후 상원의 다수당 지도자들은 미국의 대외정책을 회복하려 애써 왔다.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이같은 노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리처드 핼로란은▼

30여년간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지 등의 아시아 지역 특파원으로 활동한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지금은 하와이에 거주하면서 아시아의 안보와 미국의 아시아정책에 관한 글을 쓰는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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