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차세대 일본 애니메이션<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 입력 2000년 7월 25일 18시 55분


코멘트
'최신 일본 애니메이션', '풀 디지털 애니메이션', '<노인 Z>와 <로버트 카니발>을 제작한 감독'. '뱀파이어와 헌터와의 대결'.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를 보기 전 인터넷의 사이트를 뒤져 얻은 정보는 대강 이 정도였다. 일본 애니에서 흡혈귀가 나오는 것은 그다지 신기한 일이 아니다. 아니 너무 자주 등장해 식상할 지경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따지고 보면 뱀파이어라는 것이 서구 문화, 정확히 말하면 50년대 영국 햄머하우스 프로덕션에서 제작한 일련의 흡혈귀 영화 덕분에 퍼진 '외래 공포'가 아닌가? 그런데 세기말도 아닌 새 천년을 맞은 이 마당에 다시 흡혈귀 타령일까?

<블러드…>를 보기 전 느낌은 흥분보다는 이렇듯 다소 회의적인 의문이 많았다. <블러드 …>의 시작은 흡혈귀가 등장하는 다른 작품처럼 음산한 분위기로 시작한다. 도쿄의 아카사카로 가는 지하철 안. 침울하고 싸늘한 표정의 한 소녀가 길다른 물체를 품에 안고 있다. 그녀 외의 손님은 취객인듯한 한 남자뿐. 지하철의 덜컹거리는 소음이 높아질 때 소녀가 품안의 긴 물체에서 꺼낸 것은 서슬 퍼런 일본도. 조는 듯 싶던 남자가 놀라 도망가는 순간 칼은 사정없이 그의 등을 가르고, 객차 안은 순식간에 선혈로 물든다.

소녀의 이름은 사야. 흡혈귀를 사냥하는 이 세상에 단 하나 남은 뱀파이어 헌터이다. 태연한 표정으로 지하철에서 내리는 사야에게 다가온 데이비드란 이름의 백인은 남아있는 뱀파이어를 소탕하기 위해 요코다 미군 기지내 학교에 숨어들 것을 부탁한다.

할로윈 축제가 열리는 날. 사야와 같은 반인 샤론과 린다가 양호실로 온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양호선생이 약을 주려고 분주한 순간, 둘은 흡혈귀로 서서히 변해간다. 이때, 사야가 나타나 예의 일본도를 휘두른다. 흡혈귀로 변한 샤론은 즉사하지만, 린다는 부상을 입고 도망간다. 난데없는 살인에 넋이 나간 양호선생. 그녀는 파티장에서 린다로 가장했던 뱀파이어를 발견하지만 인질로 잡힌다. 이때 다시 나타난 사야. 그녀의 마지막 뱀파이어 사냥이 다시 시작되는데….

줄거리로 보면 <블러드…>는 전형적인 호러 액션물이다. 완숙에 가까운 테크닉으로 전개하는 박진감 넘치는 액션, 유혈과 신체 절단을 과감하게 그린 표현력, 최근 프로덕션 IG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사실적이고 절제된 캐릭터의 동작이 돋보인다. 특히 풀 디지털 애니메이션답게 실사를 방불케 하는 정교한 세부 묘사와 360도 회전촬영같은 다양한 카메라 워크는 신선한 시각적 재미를 준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적인 볼거리만 즐기며 보기에 <블러드…>는 너무 무겁고 어렵다. 전후 사정이 명확하지 않은 사야의 흡혈귀 사냥, 이유가 분명치 않은 미군기지내의 흡혈귀들, 흡혈귀의 정체를 알면서도 무언가 숨기려고 애를 쓰는 데이비드와 그의 동료….

관객에게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는 돌출상황과 이야기 전개는 극단적으로 명암이 대비되는 화면과 함께 액션에 쉽게 몰입되는 것을 저지한다. 특히 흡혈귀나 사야에 대한 묘사보다 오히려 미군 기지내의 흥청거리는 모습과 기지촌의 찌들고 스산한 분위기의 대비가 더 인상깊은 것은 왜일까?

기타쿠보 감독은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모든 가능한 상황과 사건을 동원했다"며 작품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완곡하게 피해갔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작품 속에 여러 의문에 대한 답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부분에 갖은 고초를 치른 양호선생이 허탈한 표정으로 혼자 내뱉는 말, "사람들도 역시 서로 죽고 죽이지 않는가?" 이때 라디오에서는 미국이 북 베트남의 폭격을 감행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본격적인 월남전의 개막을 알린 미국의 폭격. 인류사에 기록된 가장 무의미한 살육전의 시작을 알리는 보도와 양호 선생의 말은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감독의 권유대로 작품이 주는 다양한 느낌을 있는 그대로 느끼면서 볼 때 <블러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그것이 작품의 주제를 쓸데없이 확대해석한 것이든, 아니면 메시지에 대한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오해이든 크게 중요치는 않다. 문제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것 자체일테니까.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 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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