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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7월 20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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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보름 전 ‘속옷까지 벗어던져 숨겨진 부실은 없다’고 선언했던 금융감독원은 벌집을 건드린 것처럼 뒤숭숭한 분위기. 금감원은 한경연에 공개질의서 등을 보내는 등 강경대응을 검토했다가 20일부터는 아예 ‘무대응이 상책’이라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좌승희 한경연 원장도 “정부를 도와주려던 제안서가 정부를 흠집 낸 보고서로 변질됐다”고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대학생 리포트라는 금감원 평가에 자존심이 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며 정부와의 ‘대결 국면’으로 비치는 것이 부담스러운 눈치다.
논란의 당사자들이 ‘확전’을 피하면서 부실규모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모양새다. 그러나 논란은 사그라질지 모르지만 시장의 투명성은 또다시 깊은 상처를 입었다.
한경연 보고서는 부실채권 규모를 두가지 방법으로 추정했다. 금감원이 대학생 리포트라고 공박했던 것은 이 중의 한 방법. 나머지 방법으로도 정부 발표 91조원보다 20조∼30조원 많은 부실채권이 산출된다. 지급보증 등을 이중계산한 오류 등에 대해서도 한경연 관계자는 “소규모였기에 처음부터 제외했다”고 반박한다.
금감원측은 “이자를 제대로 못내는 기업은 여신심사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제외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워크아웃 기업들에 파견된 은행 경영관리단의 도덕적 해이 행태와 무능을 감안할 때 이 주장을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많다.
한경연의 부실채권 산출 방식은 새로운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이 ‘대학생 리포트’에 큰 관심을 보인 것은 역설적으로 정부 통계의 신뢰도가 그만큼 추락했기 때문이 아닐까. 금융당국은 정부와 민간측의 부실추계 차이를 세밀하게 분석해 명쾌하게 해명하는 게 신뢰회복을 위한 지름길이다.
박래정<금융부>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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