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경택칼럼]2002년 大選 '윈―윈' 전략

  • 입력 2000년 7월 19일 18시 43분


누가 뭐래도 6·15선언은 역사적인 것이다. 선언 내용은 착실히 실천에 옮겨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최근 드러난 여야의 속내를 보면 낙관만 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북측의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에 대한 원색적인 비방방송 한 방으로 그동안 큰 명분에 가려져있던 정치권의 본심이 한 달여만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한나라당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 속마음은 대개 다음과 같은 분위기다. “그것 봐라. 북한이 뭐가 달라졌느냐. 우리한테서 돈 울거 내려고 달라진 척하는 것 아니냐. 김정일이 총명하고 예의가 밝다니? 공산주의자의 쇼에 쉽게 속아넘어가서는 안된다. 북한의 무례한 행위를 보고도 침묵하고 있는 정부는 도대체 누구 편이냐. 무슨 큰 약점을 잡혔기에 제대로 항의를 못하느냐. 그리고 착각들 하지 말라고. 많은 사람들이 ‘반통일 세력’으로 몰릴까봐 말들을 하지 않고 있어서 그렇지 사실은 DJ정권의 조급한 대북정책에 대해 불안해하는 보수층이 아직은 다수라는 것을 알아야 돼. 다음 대선 때 분명히 표로 나타나겠지만.”

▼차기 대권은 아무래도…▼

이제 여권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자. 여권의 속내는 북한방송에 대해 북한의 태도도 나쁘지만 이회창총재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이른바 양비론을 흘린 남궁진대통령정무수석의 발언, 그리고 김대중대통령이 일본 외상에게 했다는 ‘차기 정권…’발언을 통해 어느 정도 읽어볼 수 있다.

청와대 쪽 발언을 토대로 정리해 보면 여권에는 대강 이런 정서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회창총재는 총론으로는 초당적 지지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남북화해 무드에 찬물을 끼얹고 발목 잡는 얘기만 하고 있지 않나. 차기 대통령은 남북문제를 풀어 갈 철학과 통일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이총재가 무슨 철학이나 비전이 있냐고? 우리 김대중대통령은 야당시절부터 확실한 통일 방안을 제시했잖아. 그래서 집권후 일관성 있는 햇볕정책을 펼 수 있었고 그 결과 남북정상회담이라는 큰 업적을 이룬 것 아닌가. 그러니까 북한에서도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지만 가급적 말이 통하는 사람이 돼야 남북문제가 일관성 있게 풀려 나가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는 거겠지. 이런저런 것을 따져 보면 다음 대권은 아무래도 이회창씨 차례는 아닌 것 같아.”

▼北風시비 없는 페어플레이▼

북한방송으로 빚어진 파문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일단락된 듯하지만 문제는 북한이 언제 또 이런 식으로 남쪽을 흔들어 놓으려 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런 전술이 효과를 보았다고 판단하면 앞으로도 이를 반복할지 모르고, 결국 2002년 대선까지 이어져 대선은 신북풍(新北風)권내에서 치러질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北風시비 없는 페어플레이

북한이 이회창총재 비난방송을 했을 때 이렇게 대응했으면 어떠했을까. 먼저 김대중대통령은 상호비방 자제 약속을 깬 북한에 대해 따끔하게 잘못을 지적하고 이총재에게 전화를 건다. “북한이 변한다고는 하지만 어찌 하루아침에 완전히 달라질 수 있겠소. 북한이 무슨 속셈으로 엉뚱한 소리를 했는지 모르지만 신경쓰지 맙시다. 김정일위원장이 서울에 오거든 이총재께서도 단독으로 만나 보시지요. 제가 보기에는 얘기가 통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미 여러 번 얘기한 것처럼 남북 화해의 초석만 놓고 물러갑니다. 절대 오해하지 마세요. 누구든 남북문제를 대선에 이용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이에 대한 이총재의 응답.

“북한은 아마 남한사회를 분열시켜 앞으로 대남(對南)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술책을 쓰는 것 같은데, 우리가 이런 술수에 말려들어서는 안되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신경 안 씁니다. 남북문제의 본질에 관한 한 초당적 협조를 한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여야 어느 편이건 남북문제를 대선에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대통령의 말씀은 지당합니다. 북측에 대해서도 남쪽 대선에 어떤 작용을 하려는 생각을 추호라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단단히 일러 둬야겠지요.”

이렇게 두 분이 다짐한대로 남북관계가 순조롭게 풀려가는 가운데 다음 대선이 과거와 같은 북풍시비에 휘말리지 않고 페어플레이로 치러진다면 그것은 진 편이건 이긴 편이건 양측 모두 이기는 그야말로 ‘윈―윈’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경택<논설실장>euh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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