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月蝕(월식)

  • 입력 2000년 7월 18일 18시 46분


蝕―벌레먹을 식 矮―난장이 왜 晝―낮 주 叛―배반할 반 皆―모두 개 災―재앙 재

아직 人智가 깨치지 않아 순진했던 옛날, 인류는 자연현상을 이해할 도리가 없었다. 엄청난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은 너무도 矮小(왜소)했으며 束手無策(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공포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자연의 人格化를 추구하게 되었다.

먼저 인간처럼 만들어 놓고 나서 섬겼던 것이다. 모든 자연현상은 인간과 똑같은 五感을 지닌, 어떤 거대한 主宰者(주재자)의 의지에 따라 비롯된다고 보고 그를 섬겼으니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볼 수 있는 이른바 ‘有情의 宇宙論’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옛날에는 큰비나 태풍, 가뭄, 地震(지진), 日蝕 등 자연현상을 예사로 보아 넘기지 않고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운행을 지배하고 있는 主宰者의 ‘意志’로 보았다. 그래서 혹 일상에서 벗어난 자연현상이라도 발생하는 때이면 온나라가 뒤숭숭했다.

왕의 德과 결부시켰던 것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日蝕이 있다. 白晝(백주)에 갑자기 하늘에서 해가 사라진다는 것은 여간 큰일이 아니었다. 天帝가 노한 것이다. 不德을 실감한 帝王은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하늘에 빌어야 했다. 民心離叛(민심이반)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당연했다. 不德한 帝王을 섬길 백성이 어디 있겠는가.

反面에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현상을 月蝕이라고 하는데 이때 달의 일부가 가려지면 部分月蝕, 전부 가려지면 皆旣(개기)月蝕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다같이 보기 드문 자연현상이지만 月蝕은 그다지 ‘큰일’로 여기지 않았다. 조상들이 月蝕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긴 이유는 간단하다. 太陽은 陽의 精氣, 人君을 상징하므로 太陽이 가려지면 큰 문제가 되나 달은 陰의 精氣로, 가려지더라도 帝王의 德과는 무관하다고 본 까닭이다.

이같은 관념은 고대 중국의 史書인 春秋에서 비롯된 것으로 日蝕에 대해서는 災殃(재앙)이라고 해서 상세히 기록한 반면 月蝕은 무시해버렸다. 이 때문에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틀어 500여 차례가 넘는 月蝕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史書에서는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日蝕이든 月蝕이든 하나의 자연현상으로 豫測(예측)까지 하며 오히려 반긴다. 科學이 발달한 탓이다. 皆旣月蝕이 오랜만에 우리나라에서도 관측됐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 중국문화)

478sw@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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