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흑진주' 윔블던서 날다

  • 입력 2000년 7월 9일 18시 21분


빈민가의 콘크리트 코트에서 싹튼 소녀의 꿈이 마침내 꽃을 피웠다.

'흑진주' 비너스 윌리엄스(20·미국). 아버지 리처드의 손에 이끌려 4세때 처음 테니스 라켓을 잡았다. 어려운 집안 살림에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정규코스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잡초처럼 자랐다.

그런 윌리엄스가 123년 역사의 윔블던에서 두 번째 흑인 여자 챔피언에 등극했다.

윌리엄스는 8일 영국 런던 근교의 올 잉글랜드 클럽에서 열린 단식 결승에서 린제이 데이븐포트(미국)를 2-0(6-3 7-6)으로 꺾었다. 흑인선수로는 57년과 58년 2연패를 달성한 알리사 깁슨(미국) 이후 42년만의 여자단식 정상 정복.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을 따낸 그녀는 비너스 로즈워터 은제 우승 트로피와 함께 65만달러의 상금을 챙겼다. 아울러 사상 처음으로 지난해 US오픈 우승자인 동생 세레나 이어 자매가 함께 그랜드슬램대회 패권을 차지하는 기록도 세웠다.

10세 때인 90년 윔블던 결승에서 '흑백 대결' 을 펼친 지나 개리슨과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의 경기를 TV로 지켜본 윌리엄스.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최고 권위의 윔블던 결승까지 오른 개리슨을 보며 감동했고 우상으로 삼았다. 언젠가 윔블던 정상에 서리라 굳게 마음먹으면서. 그로부터 딱 10년이 흘러 개리슨이 직접 관전한 가운데 윌리엄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개리슨의 한(恨)도 씻어냈다.

이날 2세트 6-6 타이브레이크에서 6-3으로 매치포인트를 잡은 윌리엄스는 데이븐포트의 리턴샷이 네트에 걸려 우승이 확정된 순간 춤이라도 추듯 펄쩍펄쩍 뛰며 환호했다. 이어 곧장 관중석으로 뛰어올라가 응원하던 아버지 리처드, 동생 세레나와 차례로 포옹하며 기쁨을 나눴다. 윌리엄스는 "정상에 오르기위해 여지껏 노력했다" 며 "그동안 잠자리에서 메이저 우승하는 꿈을 꾸다 아쉽게 깬 적이 많았는데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윌리엄스는 준준결승에서 세계 1위 마르티나 힝기스를 제압했고 결승에서는 2위 데이븐포튼마저 쓰러뜨려 진정한 최강으로 인정받았다.

2년 연속 우승을 노린 데이븐포트는 등과 발목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아쉽게 꿈을 접어야 했다. 또 이미 3차례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따낸 데이븐포트의 '메이저 결승 불패 기록' 도 깨졌다.

한편 남자복식 결승에서 호주의 마크 우드포드-토드 우드브리지조가 파울 하루이스(네덜란드)-샌던 스톨(호주)조를 3-0으로 제압, 우승했다. 프랑스오픈에 이어 그랜드슬램대회 연속 패권을 달성한 우드포드-우드브리지조는 통산 11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 존 뉴컴과 토니 로체의 최다기록에 1회차로 다가섰다.

<김종석기자·윔블던 외신종합>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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