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헌진/"담합 안했다" 공허한 주장

  • 입력 2000년 7월 2일 19시 20분


“왜 이제야….”

평택에서 주유소를 운영한다는 독자의 E메일은 이렇게 시작됐다. 27일자 본보의 ‘석유시장을 파헤친다’ 시리즈 1회분을 본 그는 ‘기름을 만지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수없이 민원을 제기해 온 고질들을 왜 이제야 공론화하느냐, 또 그렇게 한다고 무질서한 석유시장이 달라지겠느냐는 한탄 어린 글을 보내온 것.

“20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갔다”는 주유소업자로부터 “정유사 담합행위를 구체적으로 증언하겠다”는 전직 정유사 직원에 이르기까지 수백 통의 전화가 걸려올 만큼 반응은 뜨거웠다.

그 가운데 국내 정유사들의 횡포가 이미 ‘극’에 달했고 이에 맞서기에 자신들의 힘이 너무 약하다는 점은 거의 공통된 내용이었다. 정부에 대한 불신도 짙게 배어 있었다.

논란의 또 다른 축인 정유업계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대한석유협회는 30일자 일간지들에 대형광고를 싣고 본보가 제기한 대부분의 의혹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는 식으로 부인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에는 치명적인 허점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 지난 수년간 정유사 횡포를 고발해 온 주유업계의 주장은 왜 도외시했는지, 원유의 정제능력 인건비 재무구조 등은 천차만별인데 왜 정유사들의 공장도가는 비슷한지, 대규모 거래처와 일반 소비자에게 팔 때의 가격차가 왜 그토록 엄청난지 등의 ‘비상식적 현실’에 대해 일언반구의 말이 없었던 것.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태가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들의 주장엔 명백한 거짓말도 있었다. 산업자원부가 올초 ‘정부고시가 시기(97년 유가자유화 이전)에 사용하던 검증되지 않은 원가계산 방식을 더 이상 쓰지 말라’고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마치 투명한 것인 양 주장한 것.

담합이 없고 원가계산 역시 투명했다면 정유사들은 왜 7월초 올릴 예정이던 석유류의 가격을 돌연 동결했는지 역시 궁금하다. 원유가가 폭등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헌진<기획취재팀>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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