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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6월 29일 1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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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세자가 세금과 관련해 가장 신경쓰이는 부분을 꼽으라면 단연 세무조사다.
세무조사는 단순히 ‘신경이 쓰이는’ 차원을 넘어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다. 따라서 국세청의 세무조사 대상을 선정하는 작업은 무척 중요한 업무다. 납세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을 다루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무조사 대상 선정과 관련해서는 뒷말도 많다. 세무조사를 둘러싸고 ‘정치적인 배경이 작용했다’‘밉보였다’하는 말들이 나도는 것도 세무조사가 주는 부담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대상을 선정하는 업무를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른바 전산분석에 의한 조사대상 선정이 그것이다. 납세자들이 워낙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인 만큼 공무원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선정보다는 일정 기준과 분석 항목을 통해 세무조사 대상을 선정하는 것이다.
전산에 의한 세무조사 대상 선정은 객관적이며 자의성이 배제될 수 있기 때문에 부정의 소지를 크게 줄이는 효과를 거두고는 있다.
하지만 세무 문제는 복잡한데다 다양한 이유와 사연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전산 분석이라고 반드시 합리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전산분석은 각종 세부 항목과 기준을 마련해 놓고 납세자의 신고내용을 대비하는 방식으로 평가한다. 신고내용이 전산분석 기준에 가까운 납세자는 좋은 평가를 받아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반대로 신고내용이 기준과 많이 다른 납세자는 일단 대상에 포함된다.
문제는 전산에 의한 세무조사 대상 선정이 사실에 가깝지 않은 경우 이를 검증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엄청난 수익을 올린 기업이 기준에 맞춰 신고하면 상당부분을 누락시켰다고 해도 조사대상에서 제외된다. 반면 정말 실적이 나빠서 낮게 신고한 기업은 조사대상에 포함되는 불합리가 유발되는 것이다. 일종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세무조사 대상 선정 과정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때문에 전산에 의한 조사대상 선정 방식은 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많은 수익을 올리면서도 기준을 염두에 두고 눈치껏 신고하는 기업은 조사받지 않고 변변찮은 실적을 사실대로 신고한 기업은 그물에 걸려 무시무시한 세무조사를 받게되는 것이다.
국세청은 최근 세무조사 대상을 선정할 때 전산을 통한 방법이 아니라 ‘수동적’인 방식으로 조사하는 비율을 높이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부정의 소지나 시비가 있을 수 있는 방안을 채택하겠다는 것은 적어도 ‘부정’에 관해서는 국세청이 그동안 내부적으로 진행해온 개혁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세무조사 대상을 선정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점수’가 아니라 ‘사실’이다. 소득을 많이 번 납세자가 세금을 덜 내는 것을 우선 대상으로 삼아야 하고 정말로 사업이 안돼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세금 문제로 고민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사실에 근거해서 세무조사 대상을 선정할 수 있는 ‘묘안’을 마련하는 것은 국세청이 해결해야 할 영원한 숙제다.
채상병<세무사·sbcool@tax-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