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선대인/생명담보 파업 안된다더니…

  • 입력 2000년 6월 21일 19시 17분


20일부터 시작된 전국 병의원들의 집단폐업 사태를 보는 각 병원노조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의약분업에 대한 입장을 떠나 의사협회와 함께 이번 사태를 주도하고 있는 병원협회 소속 병원장들의 ‘이중 잣대’ 때문이다.

보건의료노조의 한 간부는 “‘어떤 경우에도 환자 생명을 담보로 한 파업은 용납할 수 없다’던 병원장들이 오히려 이번 사태를 독려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꼬집었다.

경희의료원 노조 관계자는 한술 더 떠 “우리는 파업을 하더라도 정상 진료에는 차질이 없도록 했는데 입원 환자까지 반강제로 퇴원시키면서 진료를 외면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개했다. 실제 대부분의 병원노조는 매년 파업 때 위급 환자가 많은 중환자실과 응급실의 인력은 대부분 정상 근무케 하는 ‘성의’를 보여온 게 사실.

그러나 21일 한 대학병원의 경우 응급실엔 전공의 20여명이 모두 빠져나간 가운데 전임의 2명만 남아 진료를 했고 중환자를 입원시키는데도 매우 인색했다. 게다가 이 병원의 입원 환자 930여명 중 약 60%인 530여명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병원을 떠나기까지 했다. 노조 파업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태업’의 강도가 센 것이다.

그나마 대부분 종합병원들은 22, 23일 중 잔여 의사들까지 모두 휴진에 들어간다는 입장이어서 ‘진짜 대란(大亂)’은 이제부터다. 이런 상황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는 국민으로선 정부의 의약분업 준비 소홀에도 비판적이지만 환자를 내팽개치는 병원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더욱 비판적일 것은 불문가지.

병원들이 노조파업 당시 ‘어떤 경우에도 환자 생명을 볼모로 해서는 안된다’고 내세웠던 엄정한 잣대를 스스로에게는 과연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너와 나는 다르다’는 식의 이중 잣대로 어떻게 남을 설득할 수 있을까. 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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