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세상]'경평축구'도 다시 만나자

  • 입력 2000년 6월 12일 19시 37분


남북한 축구팀이 맞선 경기를 직접 본 기억은 없다. 그렇지만 남북축구 경기는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북한팀과 외국팀의 경기를 서너번 관전했고, 90년 평양과 서울에서 열린 통일축구 등 여러 차례의 남북 대표팀 및 청소년팀의 경기를 현장중계로 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 내게 깊게 남아있는 것은 78년 방콕 아시아경기 축구 결승이다.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남북대표팀이 연장전까지 120분간 가슴을 졸이게 했지만 의연하게 경기를 마쳤다는 것이다. 공동우승이라는 결과에다 두 팀 주장이 시상대에서 어깨동무를 한 채 손을 흔들던 모습은 스포츠의 가치를 실감케 했다. 또 하나는 지금은 발간되지 않고 있지만 당시 주간 '스포츠동아' 기사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스포츠주간지는 표지사진으로 프로복서를 쓰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는 때였음에도 '스포츠동아'는 표지사진으로 바로 두 팀 주장의 사진을 썼고 남북축구 중심의 특집도 꾸몄다. 그러나 판매는 성공적이었다. 남북관계에 대한 시민의 염원을 다시 확인케 했다.

남북정상회담으로 스포츠교류 논의가 무성하다. 9월 올림픽, 10월 아시안컵축구의 단일팀 문제를 비롯해 2001년 세계탁구 단일팀, 2002년 월드컵 분산개최 및 단일팀, 경평축구 부활 등이 거론되고 있다.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 김운용 대한체육회장,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정상회담 수행단 일원이어서 좋은 결과가 예견된다. 특히 탁구와 축구 단일팀이나 축구와 농구의 친선경기 전례도 있어 이번에는 경평축구 부활에 대해서도 가닥이 잡힐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경평축구는 46년에 중단되었으니 대회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고는 하기 어렵다. 29년과 30년 서울에서 열린 언론사주최 경평전과 두 도시 축구단의 합의로 서로 오가며 치러진 33년부터 35년까지의 네차례 경평대항전은 현장 증인마저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서울과 평양의 경기라는 상징성 때문인지 나는 뭔가 향수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혼자만의 것은 아닐 듯 싶다.

실제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무산됐지만 94년 예정됐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당시 정부와 여당은 경평축구부활 등 문화예술교류방안을 마련했다. 95년 당시 조순 서울시장은 취임식에서 적절한 기회에 서울과 평양의 체육문화교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고건 서울시장은 98년 월드컵 주경기장 기공식에서 99년에는 서울에서, 2000년에는 평양에서 그리고 2001년에는 완공된 월드컵 주경기장에서 첫 시범경기로 경평축구를 갖자고 제의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날이다. 경평축구의 성사도 기대해본다.

<논설위원·체육학박사>dhyo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