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철환총재의 경고

  • 입력 2000년 6월 12일 19시 37분


한국은행 전철환총재의 우리경제에 대한 우려 표명은 예사롭게 듣고 넘길 일이 아니다. 전총재는 하반기에 물가상승 요인이 산적해 있는데다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빠른 속도로 축소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우리 경제가 아직 외적 충격을 무리 없이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임을 강조했다.

12일 한은 50주년 기념사에서 밝힌 전총재의 비판적 경제전망을 귀담아 듣자는 것은 우선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외국 신용평가기관들이 한국경제를 낙관적으로 얘기하고 있고 정책 담당자들이 경제의 기저(펀더멘털)가 튼튼하기 때문에 제2의 위기상황이 아니라고 주장해 자칫 개혁분위기가 해이될 가능성이 있는 시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한은총재가 통화운용과 관련된 정책선택에서 항상 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경제에 관한 발언도 현실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태임을 감안한다면 이번 그의 발언은 더욱 심각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 그가 통화운용의 최고 책임자로서 각종 경제지표를 속속들이 챙기고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그의 경고는 다른 많은 신중론자들이 내놓았던 상식적인 경고보다 객관적이고 신뢰성 있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전총재의 언급 중 특히 “금융시장의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기업과 금융구조조정을 신속히 추진하라”는 대정부 주문을 정책당국은 경청해야 한다. 경제위기론의 근원인 자금시장의 신용불안으로 인해 금융중개기능이 약해질 경우 실물경제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데도 펀더멘털 운운하는 것은 공허한 얘기일 뿐이다.

물론 전총재가 지적한 내용을 정부가 전혀 모르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경제운용에서 위기감을 제기하는 것이 항상 이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총수요관리를 선제적으로 시행하자는 전총재의 평소 주장에 대해서도 예상되는 부작용을 고려할 때 정부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입장이라는 점도 일부는 이해한다.

그러나 정책당국자들이 그와 시각이 다르다거나 혹은 통화정책 수립 때 대립적 관계에 있다는 점 때문에 그의 지적을 폄훼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성장은 빠르지만 도처에 불안요인이 깔려 있는 지금같은 때 이런 유의 경고는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다. 국가경제를 위해서라면 정부가 이를 겸허하게 수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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