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전승훈/徐대표의 '거짓말 행진'

  • 입력 2000년 6월 7일 19시 02분


“예전에 잘 아는 스님을 우연히 만나 청구동 근처 절에 가 얘기를 나눈 게 와전된 모양이다.”

7일 오전 여의도 민주당사 회의실에서 당무회의를 주재하던 서영훈(徐英勳)대표는 “어제 김종필(金鍾泌)자민련 명예총재의 청구동 자택을 방문했다는데 사실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천연덕스럽게 부인으로 일관했다.

그 시간 자민련측에서는 이미 서대표의 청구동 방문을 비공식 확인해 준 상황. 하지만 서대표는 ‘알리바이’까지 제시하며 청구동 방문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서대표는 이 뒤에도 “자민련에서 이미 확인해주었다”며 거듭 확인을 요청하는 기자들에게 “절대 그런 일 없다” “(자민련 관계자가) 그런 말을 했다면 파면감”이라며 하루내내 막무가내로 버텼다.

‘고집’에 가까운 서대표의 ‘거짓말 행진’은 결국 민주당측이 뒤늦게 회동사실을 공식 확인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공개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을 했다.

그러나 개인적 신의를 지키기 위한 ‘정치신인’ 대표의 순수한 동기였음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남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혹시라도 정직과 도덕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강조해 온 시민운동가 출신의 서대표가 많은 정치인들처럼 ‘보안을 지키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해도 된다’며 쉽게 자기합리화에 빠져버린 것은 아닐까 해서다.

그렇지 않아도 서대표의 실언(失言)가능성을 우려해 그동안 주변 참모진이 기자들의 접근을 원천봉쇄해온 것을 두고 당 안팎에서는 “시민운동가 출신으로서의 ‘투명한 이미지’에 걸맞지 않다”는 비판의 시각이 적지 않았다.

“할말은 하겠다”던 취임 때의 의지가 변질되지 않기를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승훈 <정치부>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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