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실태-후유증]어린이 5명중 2명꼴

  • 입력 2000년 6월 6일 19시 14분


인수(6)가 ‘은평소년의 집’을 거쳐 서울적십자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건 지난해 6월. 부모가 이혼한 뒤 아버지와 지내던 인수는 자주 아버지로부터 얻어맞았다. 아버지는 밖에서 문을 잠그고 일을 나가기도 했다. 어느날 술에 취한 아버지는 인수가 울먹이며 엄마를 찾자 쇠막대와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이웃주민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한 뒤 병원에 실려간 인수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머리 손 종아리 발에 멍 자국이 생겼고 눈 주위와 입술이 찢어졌으며 이빨은 대부분 썩어 있었다. 몸무게는 15㎏으로 같은 또래보다 4∼5㎏ 적었다. 인수는 지금도 어른을 보면 말끝을 흐리고 눈맞추기를 피한다.

6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의 보고서(아동학대의 실태와 후유증연구)에 따르면 아동학대의 후유증은 외상에 머물지 않고 정신장애를 유발하며 성인이 된 이후에도 정상적인 생활을 어렵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달 13일 개정 아동복지법 시행을 앞두고 서울대의대(담당 홍강의·洪剛義교수)와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가 보건복지부의 의뢰를 받아 △일반가정 1094가구 △사회복지시설에 수용된 아동과 부모 397명 △학대사례가 신고된 아동 115명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연구에 따르면 국내 아동학대 발생률은 43.7%였다.

지난달 24일 부모를 살해한 뒤 토막내 쓰레기통에 버린 혐의로 구속된 명문대 휴학생 이모씨(24)는 어려서부터 부모가 자신을 무시하고 학대해온데 불만을 품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전문가들은 이씨의 행동은 정신이상자가 아닌 정상인의 행위로 어렸을 때 학대받은 분노가 폭발하면서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형별로 보면 폭행 구타 상해 등 신체학대가 23.5%, 폭언 악담 위협 등 정서학대가 19%, 집에 가둬놓거나 음식을 주지 않는 방임행위가 20.2%, 성학대가 1.1%였다.

학대는 아니지만 체벌경험이 있는 부모는 74.6%이고 이중 17%가 아이를 잡고 흔드는 경우였다. 아동을 흔드는 행위는 머리 무게에 비해 목근육이 약한 어린이의 신체 특징때문에 두뇌손상, 심하면 생명까지 위협해 미국에선 명백한 아동학대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선 사회복지시설에 수용된 아동중 인수군처럼 ‘발달 지연’현상을 보이는 43.5%가 부모로부터 신체적 정서적 학대나 방임행위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학대받은 아동의 70% 이상이 공격적인 행동과 학습거부 도벽 우울 불안감 위축감 등의 증상을 보였다. 특히 성학대를 받은 아동은 우울증 야뇨(夜尿) 퇴행증세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중고생 면담 결과도 학대받은 경험이 있는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대인관계나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고 상당수는 성인이 되고나서도 충동조절이 안되거나 급성 스트레스 불안장애 등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교수는 “아동복지법 내용이 예전에 비해서는 개선됐지만 아동보호 관련 종사자에 대해 아동학대 신고를 의무화했을 뿐 처벌규정이 없으므로 이를 개정하고 학대아동을 위한 긴급 보호서비스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정 아동복지법 "밥 안주거나 질병치료 안해줘도 처벌"▼

7월13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아동복지법은 신체, 정신, 성적 학대 외에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하지 않거나 방임하는 경우도 아동학대에 포함시키고 있다.

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거나 질병을 치료해 주지 않는 경우, 구걸을 시키거나 아동을 이용해 구걸하는 행위도 학대행위에 포함된다.

아동학대를 신고할 수 있는 긴급전화가 시도별로 개설돼 24시간 운영되며 교사 의료인 및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는 아동학대 사실을 발견하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신고를 받은 전문 상담요원들은 즉시 현장에 출동해 현장조사서를 작성하고 필요한 경우 어린이를 부모에게서 격리해 아동복지시설이나 병원에서 보호받도록 했다.

아동 학대에 대한 처벌 규정도 최고 2년의 징역에서 최고 5년의 징역이나 최고 1500만원의 벌금으로 대폭 강화됐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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