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우리 아빠'

  • 입력 2000년 5월 26일 20시 47분


이 책은 아주 크다. 세로길이가 비행기보다 길고 쪽수로 말하자면 수십만쪽이 넘는다.

내용이 아주 뜨겁기 때문에, 햇볕에 놓아두면 폭발해서 도시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그런 책이 어디 있어’ 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이 책 주인공 요셉이 그려내는 ‘아빠’도 마찬가지다.

아빠는 못하는 게 없다. 어느날 공장에 불이 났다. 소방차가 수 백 대나 출동했는데도 불을 못 끄길래, 아빠가 발로 밟아 다 껐다.

아빠는 여행도 마음대로 다닌다. 땅에 구멍을 뚫어 쑥 들어가면 아프리카도 오스트레일리아도 나온다.

그런 아빠도 때로는 화가 난다. 뺨에서 흘러내린 눈물 방울은 요트도 한 척 띄울 수 있을 만큼 크다. 눈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면 옷에 옮겨 붙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엄마가 양동이 물을 끼얹어야 한다. 아빠도 실수할 때가 있다. 엄마와 뽀뽀하려다 키가 너무 커서 허리가 똑 꺾어져 버린 것이다. 의사가 바늘과 명주실을 가지고 달려왔다. 한바늘 한바늘 꿰맬 때 마다 아빠는 ‘아야’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린이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경험에 의해 제한받는 일이 적기 때문 아닐까. 그런 아이들에게 자기가 자랑스러워 하는 것을 설명해보라고 하면 종종 뚱딴지같은 말이 나온다.

어른들의 시선으로 우습게만 보지 말고, 사랑과 자부심의 표현으로 알아들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크고’ ‘모르는 것은 단 하나도 없는’ 요셉의 아빠자랑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그렇게 믿는다면, 세상에서 제일은 아니라도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아빠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사자로 변장한 채 길을 나서고, 몸을 가늘게 늘여가면서 요셉의 교실에 찾아오는 아빠의 이야기는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유쾌한 문학적 텍스트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1997년 네덜란드 어린이문학상을 수상한 인기 동화작가. 본래는 다람쥐가 주인공인 동물 동화가 ‘장기’다. 강명순 옮김. 117쪽 7500원.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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