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벤허의 누아르版 '글래디에이터'

  • 입력 2000년 5월 25일 20시 36분


올 여름 흥행영화의 신호탄이 될 ‘글래디에이터’는 ‘벤허’의 누아르판이라고 할 만하다.

황태자의 질투로 로마 장군에서 검투사 노예로 전락한 뒤 몸뚱이 하나로 복수에 성공하는 막시무스장군(러셀 크로)은 친구의 배신으로 유대귀족에서 갈리선 노예로, 다시 로마 집정관의 양아들로 부활해 원수를 갚는 ‘벤허’의 닮은 꼴이다. ‘벤허’의 지중해 해전과 전차경주 장면은 게르만족과 로마군의 회전, 검투사들의 혈투로 병치된다.

물론 컴퓨터 그래픽으로 복원한 콜로세움 만큼 전투신들 역시 더욱 정밀하고 웅장해졌다. 특히 1만6000여개의 불화살과 투석기가 등장하는 초반 10분의 전투신은 ‘라이언일병 구하기’ 의 고대판이라고 할만큼 소름 끼치도록 생생하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 전투신에서 홍콩영화 ‘백발마녀전’이나 ‘동사서독’의 검술대결 장면에서처럼 배우들의 고속 동작을 시분할한뒤 연속된 삽화처럼 펼쳐보임으로써 보다 강렬한 시각효과를 낳았다.

감독은 상업영화의 최전선에서 영화비평가들의 심장을 움켜 잡아온 대가답게 제작비 1억1000만달러 짜리의 이 영화를 단순한 스펙터클로만 머물게 하지 않았다. 그는 ‘벤허’의 윌리엄 와일러보다 ‘와일드 번치’의 샘 페킨파의 전통에 더 충실하다.

영화를 보다보면 피에 굶주린 채 콜로세움에 앉아있는 로마시민들은 곧 영화관 속 관중으로 전환된다. 혼자서 대여섯명의 검투사들을 순식간에 해치우는 막시무스는 ‘WWF’의 스타 헐크 호건의 복사판이다. 막시무스가 그 잔혹한 폭력 끝에 “얼마나 더 보여줘야 만족하겠느냐”며 관중을 야유하고도 열렬한 환호를 받는 장면에서 우리는 마음속 숨은 악어를 대면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분명 러셀 크로의 영화다. 10년전 근육질 액션배우의 천하통일을 선언한 아널드 슈워츠제네거의 ‘라스트 액션 히어로’를 비웃기라도 하듯 크로는 이 작품을 통해 21세기형 액션 히어로의 한 경지를 이룩했다. 같은 호주출신 액션스타였던 맬 깁슨도 이루지 못했던 ‘햄릿의 표정을 한 코난’은 그의 몫이 됐다.

이 영화를 읽는 묘미는 몇가지 더 있다. ‘벤허’와 비교를 했을 때는 ‘신의 실종’이고 역사적 사실과 관련해서는 ‘억지춘양식 공화정 찬사’다. 59년 제작된 벤허가 구원의 존재로 내세웠던 예수는 2000년 제작된 ‘글래디에이터’에서 가족으로 대체됐다. 또 영화와 달리 나쁜 황제 코모도스는 암살당했고 그의 죽음이후 로마는 빛나는 공화정시대를 맞은 것이 아니라 60여년간 20여명의 황제가 갈릴 정도로 최악의 시대를 맞았다. 15세이상 관람가. 6월 3일 개봉.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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