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경기북부 水害방지대책 늑장

  • 입력 2000년 5월 18일 19시 29분


‘올해도 물난리를 피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연례 행사처럼 집중호우 피해를 보아 온 경기 북부지역의 수해 방지 대책이 당국의 늑장 행정과 예산 부족으로 예정보다 턱없이 늦어지거나 부실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거의 무방비 상태로 우기(雨期)를 맞아야 할 지역이 한두 곳이 아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올해도 또 물난리를 겪는 것이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다.

본보 취재팀이 16∼18일 경기 동두천 파주 의정부 고양 구리시와 연천 포천군 등 상습 수해 지역을 돌아본 결과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난해 수해를 입은 뒤 대통령 비서실 수해방지대책기획단에 제출한 수해 방지 대책 가운데 상당 부분이 아예 추진되지 않았거나 사업이 늦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18일 오후 동두천 시가지를 관통하는 신천. 생연2동 신천교에서 하류 쪽으로 2.5㎞ 구간 곳곳에 하천 폭을 넓히고 제방을 쌓는데 사용할 흙더미가 10∼20m 높이로 쌓여 있었다.

대부분의 제방은 지난해 물에 휩쓸려 내려간 모습 그대로였고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간 곳에는 철근이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동두천시 관계자는 “공정이 구간별로 28∼70% 가량 완료됐다”며 “급한대로 제방 보강 공사만이라도 6월말까지 마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사 현장에서 만난 공사 감독자는 “워낙 손볼 곳이 많아 하천 폭을 넓히고 바닥을 파내는 공사는 올해 말까지도 끝내기가 어려울 것 같다”며 “제방을 보강하는 공사도 우기가 닥치기 전에 끝내기 힘들 것”이라고 털어놨다.

상패동 주민 유모씨(53·상업)는 “작년에 피해를 본 뒤 바로 공사를 시작했다면 이렇게 늦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당국의 늑장 행정을 원망했다.

신천 주변의 생연 보산 상패 광암동 일대 5500여 가구는 지난해 8월 집중호우로 신천이 범람하는 바람에 물에 잠기는 피해를 보았었다.

17일 오전 파주시 문산읍을 감도는 문산천. 임월교에서 상류쪽으로 3㎞ 구간 곳곳에 하천 바닥에서 퍼올린 진흙이 제방보다 더 높게 쌓여 있었다. 강바닥을 낮추기 위해 파낸 흙을 하천 바로 옆 평지에 그대로 쌓아둔 것. 덮개 한 장 없이 방치돼 있어 당장이라도 비가 오면 빗물에 휩쓸려 다시 강바닥으로 흘러들 수밖에 없어 보였다.

공사 현장의 인부는 “모래는 팔면 돈이 되지만 진흙은 마땅히 처리할 곳이 없어 하천변에 쌓아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둑을 높이는 공사는 마무리됐지만 돌망태로 제방을 보강하는 공사는 아직 시작도 안된 상태였다.

수해 방지 공사 착공이 늦어져 우기가 시작되기 전에 공사를 마칠 수 없는 곳은 이곳뿐만이 아니다. 고양시 일산구 장월평천과 덕양구 성사천의 수로 확장 및 준설 공사는 각각 내년 6월과 4월이 돼야 끝난다. 또 파주 지역 동문천과 곡릉천 공사도 올 12월 말과 내년 3월에야 끝날 것으로 보인다.

고양시 관계자는 “국비나 도비 지원 문제가 확정되는 시점에 따라 공사를 시작하다 보니 공기가 예정보다 늦어졌다”고 말했다.

또 동두천 의정부시 등 대부분의 시와 군이 상습 침수 지역에 배수 펌프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도 펌프장 시설을 만들 부지를 땅주인들로부터 제 때 매입하지 못해 공사가 늦어지고 있다.

의정부시 관계자는 “일단 6월말까지 펌프만이라도 임시 가동할 수 있도록 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또 예산 부족으로 아예 공사를 시작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고양시는 공사비가 없어 일산구 가좌천 도촌천과 덕양구 하현천의 수로 확장과 준설 공사를 내년 이후로 미뤄 놓았다.

구리시는 왕숙천 1.5㎞ 구간에 대한 제방 축조와 준설 공사를 하려고 했지만 도비 지원이 안돼 손을 놓고 있다.

구리시 관계자는 “왕숙천 제방을 현재보다 1∼1.5m 가량 높여야 안전하다는 연구 용역 결과가 나온 것이 94년인데 지금까지 공사를 못하고 있다”며 “수십억원을 아끼려다 수백 수천억원의 피해를 볼지 모른다”며 불안해했다.

포천군은 수해방지대책기획단에 제출한 수방사업계획 4가지 중 포천천 준설 공사와 영평천 제방 보강 공사 등 3가지를 예산이 없어 못하고 있다.

포천군 관계자는 “도와 정부에 여러 차례 예산 지원을 건의했지만 번번이 무시당했다”며 “특히 영평천 제방은 너무 오래돼 집중호우가 내리면 무너질 위험이 크다”고 걱정했다.

<동두천·파주·연천〓남경현·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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