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현장진단]서울 노후아파트村 재건축 신청 붐

  • 입력 2000년 5월 16일 19시 12분


건물의 용적률을 낮추는 것을 주내용으로 하는 서울시 도시계획 조례 입법 예고안이 8일 발표된 이후 서울의 오래된 아파트와 연립 주택을 중심으로 재건축을 서두르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조례안이 발표된 이후 서울 각 구청 건축과에는 재건축을 계획하고 있던 주민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서초구 건축과 김기대(金基大)과장은 “직원들이 하루 평균 100여통의 전화를 받는다”며 “지금 재건축을 신청하면 기존의 용적률을 적용받을 수 있는지를 주로 많이 묻는다”고 말했다.

각 구청에는 재건축을 위한 건물 안전 진단 신청도 늘고 있다. 건물 안전 진단 결과 D급 판정을 받아야 재건축조합 설립 및 재건축 신청이 가능하기 때문.

서초구의 경우 안전 진단 신청이 1∼4월 15건이었으나 5월 들어 벌써 10건을 넘어섰다. 구 관계자는 “발표가 난 이후 그동안 잠잠했던 잠원동 한신아파트 등 대규모 단지 아파트 주민들이 재건축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구도 이달 들어 5건의 안전 진단 신청이 접수돼 안전 진단 심의위원회를 2주에 한번에서 매주 한번 열 방침이다.

이같은 현상은 특히 20년 이상된 아파트가 많은 서초 강남 송파 양천구 등을 중심으로 크게 번지고 있다. 특히 재건축을 하려면 주민 80%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연립 주택을 중심으로 재건축붐이 일고 있다.

이처럼 재건축을 서두르는 이유는 용적률 적용 기준에 따라 재건축 비용과 수익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

가령 현재 일반주거지역의 경우 용적률이 300% 이하지만 도시계획 조례에 따라 일반주거지역 2종으로 분류되면 200% 이하로 낮아진다. 이 경우 땅 규모에 따른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현재 규정을 적용하면 20층 안팎으로 지을 수 있는데 200% 이하가 되면 12층 이상 짓기가 힘들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단지 규모가 큰 아파트의 경우 재건축이 어려워진다는 것이 부동산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송파구 가락시영아파트 주민 김모씨(45)는 “그동안 주민들의 의견이 엇갈려 재건축 추진이 지지부진했는데 최근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창립 총회를 열고 구청에 안전 진단을 신청하겠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지금 재건축을 신청하지 않으면 돈을 더 들여 재건축을 해야 한다고 해서 재건축 동의서에 서명해줬다”고 말했다.

물론 지금 안전 진단을 신청해도 도시계획 조례 공포 예정일인 7월 1일까지는 조합 설립도 힘들 정도. 안전 진단∼조합 설립∼건축 심의∼사업 승인까지 아무리 빨라도 6개월 이상 걸리는 만큼 종전 기준을 적용받기 힘들다.

그러나 도시계획 조례의 부칙에 일정 기간 기존의 용적률을 적용하는 경과 규정을 둘 것으로 예상돼 지금 신청하면 경과 기간에 사업 승인을 받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일선 구청 관계자들은 경과 규정을 두지 않으면 재건축 민원인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만큼 6∼12개월 정도 경과 규정을 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일반주거지를 1, 2, 3종으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3∼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할 때 경과 규정을 두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건축 신청이 몰리면서 안전 진단이 부실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안전 진단 업체들이 영세하고 난립해 있는데다 일부 구를 제외하고는 최저가 입찰 방식을 도입하고 있어 덤핑 수주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안전 진단 결과 D급 판정을 받은 서초구 W아파트의 한 주민은 “앞으로 짧게 잡아도 5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멀쩡한 건물인데 D급 판정을 받았다니 어이가 없다”며 “재건축을 위한 재건축이 돼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한 안전 진단업체 관계자는 “최근 업체가 난립하면서 1000만원짜리 공사를 500만원 이하에 낙찰받는 경우도 나와 아예 입찰을 포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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