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이른 아침 남산길을 걷고 있었다. 한 아이가 가방을 메고 따라왔다. 가만히 보니 내가 나온 초등학교의 먼 후배였다. 나는 서울 남산자락에 있는 숭의초등학교를 나왔다. 다가가서 몇학년이냐고 묻고 내친 김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선생님 이름들을 대며 아느냐고 물었다. 심익섭선생님, 유영실선생님, 김삼봉선생님, 이숙자선생님…. 그런데 뜻밖에도 그 녀석은 유영실 선생님이 자기 담임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놀랐다. 근 30년전인데 선생님이 아직 그 학교에 계시리라고는 믿겨지지 않았다. 혹시 동명이인이 아닐까하는 마음이 들어 더 꼬치꼬치 물었다. 그 후배는 그런 내가 이상해 보였는지 줄행랑을 쳤다.
오래전 은사에게 전화를 하는 데는 실로 적지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스승의 날이 가까워지면 몇번이고 전화를 들었다 놓았던 경험이 나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내가 나온 초등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유영실 선생님을 찾았다. 야외학습을 나가셔서 자리에 계시지 않았다. 며칠 후 다시 전화를 드렸다. 근 30년이라는 세월의 두께를 뚫고 전해진 그 분의 목소리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들었던 그 음색 그대로였다. 그 때 선생님은 만삭의 몸으로 우리를 가르치셨다. 그동안 많은 선생님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지만 유독 초등학교 시절의 그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잔잔하게 남아있는 것은 어쩌면 선생님으로부터 느꼈던 모성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선생님을 찾아가 뵈었다. 꽃을 사들고 내가 쓴 책도 한 권 들고서 말이다. 학교 현관에 들어섰다. 나의 시선을 묶어두는 것이 있었다. 이전에 재직하셨던 선생님들의 빛바랜 사진들이었다. 그 사진 앞에서 사람이 기억의 감옥에 갇힌 수인(囚人)임을 절감했다. 교무실로 들어섰다. 선생님 한 분이 뒤로 하신 채 서계셨다.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신 선생님의 미소. 남보다 빨리 머리가 희어져 이미 반백이 되어버린 나는 그 미소앞에서 줄맞춰 책상에 앉던 어린 학생으로 돌아가 버렸다. 선생님은 여전히 거기 그대로 계셨다. 교장도 교감도 아닌 평교사의 모습으로.
나는 그리던 선생님을 다행히 쉽게 찾은 편이다. 그나마 사립학교라서 한 학교에 오래 계실 수 있었기에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공립학교의 경우에는 자주 전근을 가시기 때문에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인터넷을 이용해보자. 각 시도별 교육청 사이트(http://my.netian.com/∼jkm501/site/site3.html)에 들어가 민원실이나 열린마당 등의 코너를 클릭하면 ‘스승 찾기’가 나온다. 다시 그곳을 클릭해 기억나는 선생님 성함을 적어넣으면 선생님의 최근 근황을 조회해 볼 수 있다. 지금 당장 클릭해보자. 그리운 선생님의 미소와 만나보자. 그리고 그 미소에 안겨보자. 세월의 이끼를 털어내면서.
정진홍(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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