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의 e컬처]'인터넷 바다'가면 스승님이 계신다

  • 입력 2000년 5월 14일 19시 29분


악어, 코끼리빤스, 미친개, 황금박쥐, 삼겹살 ….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에 만났던 선생님들의 별명이다. 그 선생님들의 이름은 잊어도 별명은 여간해서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에는 꿈에 나타날까 두려운(?) 존재들이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추억거리다. 모 방송국의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출연자들이 그리운 선생님을 찾아 나서는 경우가 많다. 간혹 돌아가신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생존해계신 은사를 만나게 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나도 나의 그리운 선생님을 떠올리게 된다.

어느날 이른 아침 남산길을 걷고 있었다. 한 아이가 가방을 메고 따라왔다. 가만히 보니 내가 나온 초등학교의 먼 후배였다. 나는 서울 남산자락에 있는 숭의초등학교를 나왔다. 다가가서 몇학년이냐고 묻고 내친 김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선생님 이름들을 대며 아느냐고 물었다. 심익섭선생님, 유영실선생님, 김삼봉선생님, 이숙자선생님…. 그런데 뜻밖에도 그 녀석은 유영실 선생님이 자기 담임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놀랐다. 근 30년전인데 선생님이 아직 그 학교에 계시리라고는 믿겨지지 않았다. 혹시 동명이인이 아닐까하는 마음이 들어 더 꼬치꼬치 물었다. 그 후배는 그런 내가 이상해 보였는지 줄행랑을 쳤다.

오래전 은사에게 전화를 하는 데는 실로 적지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스승의 날이 가까워지면 몇번이고 전화를 들었다 놓았던 경험이 나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내가 나온 초등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유영실 선생님을 찾았다. 야외학습을 나가셔서 자리에 계시지 않았다. 며칠 후 다시 전화를 드렸다. 근 30년이라는 세월의 두께를 뚫고 전해진 그 분의 목소리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들었던 그 음색 그대로였다. 그 때 선생님은 만삭의 몸으로 우리를 가르치셨다. 그동안 많은 선생님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지만 유독 초등학교 시절의 그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잔잔하게 남아있는 것은 어쩌면 선생님으로부터 느꼈던 모성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선생님을 찾아가 뵈었다. 꽃을 사들고 내가 쓴 책도 한 권 들고서 말이다. 학교 현관에 들어섰다. 나의 시선을 묶어두는 것이 있었다. 이전에 재직하셨던 선생님들의 빛바랜 사진들이었다. 그 사진 앞에서 사람이 기억의 감옥에 갇힌 수인(囚人)임을 절감했다. 교무실로 들어섰다. 선생님 한 분이 뒤로 하신 채 서계셨다.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신 선생님의 미소. 남보다 빨리 머리가 희어져 이미 반백이 되어버린 나는 그 미소앞에서 줄맞춰 책상에 앉던 어린 학생으로 돌아가 버렸다. 선생님은 여전히 거기 그대로 계셨다. 교장도 교감도 아닌 평교사의 모습으로.

나는 그리던 선생님을 다행히 쉽게 찾은 편이다. 그나마 사립학교라서 한 학교에 오래 계실 수 있었기에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공립학교의 경우에는 자주 전근을 가시기 때문에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인터넷을 이용해보자. 각 시도별 교육청 사이트(http://my.netian.com/∼jkm501/site/site3.html)에 들어가 민원실이나 열린마당 등의 코너를 클릭하면 ‘스승 찾기’가 나온다. 다시 그곳을 클릭해 기억나는 선생님 성함을 적어넣으면 선생님의 최근 근황을 조회해 볼 수 있다. 지금 당장 클릭해보자. 그리운 선생님의 미소와 만나보자. 그리고 그 미소에 안겨보자. 세월의 이끼를 털어내면서.

정진홍(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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