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NGO는요]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 입력 2000년 5월 6일 14시 58분


1999년 1월에 발족하고, 그해 3월에 '동강의 비오리'에게 제1회 풀꽃상을 드리는 것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풀꽃세상을위한모임'(이하 풀꽃세상)은 21세기형 시민환경단체이다. 21세기형 환경단체라 말하는 것은 지난 세기의 환경운동이 이마에 머리끈 콱 동여매고 시위나 함성, 절규로 제도개선이나 좋은 정책을 이끌어내려고 주로 권력을 상대로 노력했다면, 이번 세기의 환경운동은 사람들 누구에게나 잠복해 있는 마음 깊은 곳의 감수성에 호소함으로써 작은 실천을 이끌어내려는 메시지운동체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우리 단체의 기본정신은 우리 시대의 모든 환경문제가 자연에 대한 이원론적 가치관, 그러니까 자연을 사용가치로만 보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경제우선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파악했으므로,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하자'이다. 그것이 사람에게 유용한가 유용하지 않은가(사용가치)를 떠나서 존재가치를 옹호하자는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단체명 때문에 무슨 들꽃사랑회 정도로 아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이어서 '보길도 해변의 갯돌', '가을 억새', '인사동 골목길' '새만금 갯벌의 백합(조개)' 등에 풀꽃상을 드리면서 풀꽃상을 받은 대상과 관련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파함에 따라, "아하! 이 모임이 무슨 들꽃탐사회나 야생화사랑회가 아니로구나", 알 만한 사람들에게는 슬슬 제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요컨대, 온세계를 통틀어 유례가 없을 자연물이나 개념에 상을 드리는 '풀꽃세상'의 '풀꽃상'은 환경문제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법이고, 모임이 정작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하는 것은 풀꽃상 배후에 깔려 있는 메시지라 할 것이다.

1회 풀꽃상을 드린 '동강의 비오리'는 본래 시베리아 철새였다가 동강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곳의 철새가 된 비오리에게 설득력 없는 댐건설을 강행해서 물에 파묻거나, 시베리아로 다시 떠나게 할 작정이냐,는 물음이 짙게 깔려 있었다.

2회 풀꽃상을 드린 '보길도의 갯돌'은 그 해변의 까만 갯돌을 그냥 그곳에서 즐기지 않고 꼭 호주머니에 슬쩍 넣어서 집에 가져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자연을 사유화하는 한국인의 못된 탐심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때 메시지는 '보길도 해변에는 아름다운 갯돌이 있습니다'였다. 그러니 보길도의 갯돌뿐 아니라 홍도의 풍란이나 태백산 주목이나 이 땅의 다른 곳의 모든 자연물을 제발 그곳에 있는 그대로 즐기고, 아끼고, 바라보고 물려주자는 조용한 주장이었다. '조용히 주장한' 까닭은 아무리 옳은 주장이라도 핏대를 내면서 하는 주장에는 겁많은 보통사람들이 고개를 돌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풀꽃상이라는 방법적 접근을 통해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 그 실효가 더 높다고 우리 단체는 생각하고 있다.

3회 풀꽃상은 '가을 억새'에게 드렸다. 이 땅의 산하에 가을이면 희게 흔들리면서 조용히 서 있는 억새에게 상을 드리면서 세상에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는 억새 한 포기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였다. 인간중심주의가 얼마나 무례하고 못된 태도인가를 절감하게 하는 일은 우리 한국사회에서 다반사로 일어나기 때문에, 이 메시지 또한 여간 엄숙한 메시지가 아니었다. 좀 겸손해지자,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라. 우리가 가을 억새 한 포기보다 뭐가 더 잘 낫느냐? 자연환경에 가장 맹독을 끼치는 게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하는 자성의 촉구였다.

지난 겨울 드린 4회 풀꽃상은 '인사동 골목길'이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큰 길, 속도, 경쟁에 대한 반어적 선택이었다. 느림, 여유, 추억, 인정으로 상징되는 골목길에 풀꽃상을 드리면서 우리가 얼마나 정신없이 크고 빠르고 높고 엄청난 것만 추구하고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자, 이대로 계속 나간다면 희망이 없다는 메시지가 그것이었다.

이제 며칠 후인 5월5일 어린이날에 다섯 번째 드리는 풀꽃상은 '새만금 갯벌의 백합'이라는 조개에게 드릴 작정이다. 갯벌가치를 오판하고 무지막지하게 천문학적인 돈(혈세)을 퍼부어 강행되고 있는 새만금간척사업으로 그곳 갯벌의 명물인 백합이 영원히 사라질 판에 착안, '조개도 우리와 함께 갯벌에 살 권리가 있다'는 게 이번 메시지의 간절함이다.

우리는 꼬박꼬박 상을 '주었다'고 표현하지 않고 '드렸다'고 표현한다. 존경심을 회복하자면 말투부터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말투를 바꾸면 행동도 달라진다는 것을 우리 '풀꽃세상'은 경험으로 확신한다.

2000년 5월 초순 현재, 풀꽃세상의 회비를 내는 회원은 1.150여 명. 회원은 '월1천원부터'의 회비를 내신다. 몇 사람의 큰 돈보다도 많은 사람의 적은 돈으로, 혼자 멀찍하니 앞서 가는 것보다 여럿이 조금씩 같이 가는 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풀꽃상 드리는 것 외의 주요활동은 상을 드릴 때마다 『풀씨』라는 제목의 비매품 매체를 발행해 회원들에게 풀씨처럼 뿌리는 일이다. 회원들만 읽다보니, 일반인들도 소박하기 짝이 없는 『풀씨』를 만나고 싶다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서 얼마 전 '지구의 날2000 세종로 차없는 거리 행사' 때 지금까지 냈던 1-4집을 단행본(도서출판명상)으로 묶어 『풀씨』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내놓기도 했다. 출판도 운동이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이제는 일반시민들도 책방에서 매우 이색적인 책, 『풀씨』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회원의 회비로는 오로지 상패제작과 매체인 『풀씨』발행에만 쓰고, 나머지 경비는 1998년 12월 화재로 '풀꽃'(草英)이라는 이름을 가진 따님을 잃은 특정인(풀꽃세상 대표 정상명/화가)이 묵묵히 지원하고 있다. 24살 난 맏딸을 사고로 잃은 사람이 태동시킨 단체라 단체운영의 민주성, 돈 문제와 관련한 투명성, 초심의 유지는 믿어도 될 것이다. 만약 모임이 나쁘게 변질한다면, 그것은 잃은 자식에 대한 이중의 모욕이 될 것이다.

'풀꽃세상'은 모임 태동의 그런 아픔과 이후 지키려고 하는 정신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동참하시는 회원들을 '풀씨'라고 부른다. 우리 모두는 자연의 일부일 뿐, 모든 생명체/비생명체와 공생/공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런 마음을 '풀씨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서이다. 이 따뜻하고 색깔이 분명한 모임에 많은 분들이 마음을 모았으면 한다.

홈페이지 주소는 www.fulssi.or.kr, 전화번호는 02)325-6801. 전화 한통화면 누구나 '풀씨'가 될 수 있다.

최성각/소설가· 풀꽃모임 사무국장 fuissi@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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