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현대투신 정상화싸고 정부-현대 힘겨루기

  • 입력 2000년 5월 3일 19시 36분


“시장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이용근·李容根 금융감독위원장)

“경영권을 내놓으라는 말이냐.”(현대 고위관계자)

정부가 현대투신 정상화를 위해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 일가의 사재출자를 다각도로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현대그룹은 3일 ‘사재출자 불가’를 공식 선언, 투신정상화를 둘러싸고 정면으로 힘을 겨루는 양상으로 발전했다.

이기호(李起浩)대통령경제수석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통해 “현대투신 문제는 현대가 해결하는 것이 대원칙”이라며 “자본잠식분 1조2000억원을 대주주와 오너일가가 채워 넣어야 시장금리를 통한 유동성지원이나 연계콜 해소시한 연장 등이 검토될 수 있다”고 못박았다.

반면 현대투신 이명규 전무는 “현대는 더 이상 내놓을 카드가 없으며 이미 밝힌 자구계획만으로 충분하다”면서 “투신문제는 연계콜만 해소하면 해결되므로 그룹이 나설 필요는 없다”고 밝혀 정명예회장 일가의 사재출자 요구를 정식 거부했다.

▼자본시장 볼모 책임미뤄▼

▽갈등 표면화의 배경〓양측의 갈등은 “자본시장이 출렁이면 누가 더 다급한지 보자”는 배짱겨루기의 성격을 띠고 있다.

양측이 타협점을 찾아내지 못하면 현대투신의 수탁고가 급감, 유동성 위기가 오고 현대 각 계열사의 주식은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며 자본시장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공멸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대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재출자는 경영권 위협"▼

▽뜨거운 감자 ‘사재출자’〓정부의 주문은 현대투신이 안고 있는 1조2000억원의 부실을 현대가 책임지고 해소하고 이중 일부를 총수일가의 사재출자로 해결하라는 것. 현대측은 이기호 경제수석의 ‘실권주 인수방식을 통한 대주주의 사재출자’ 발언 이후 사재출자를 검토하다가 3일부터 강경 입장으로 선회했다.

현대측은 “상호출자로 엮어져 있는 재벌의 특성상 총수 일가가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중공업 전자 건설 등의 지분을 팔 경우 계열사의 경영권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부 관계자들은 정부의 의도에 대해 의구심까지 내비치는 상태.

증시상황이 좋지 않아 정명예회장 3부자가 가진 계열사 주식의 총액이 6700억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주식을 팔면 경영권 방어가 힘들다는 것.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은 이에 대해 “현대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명예회장이 자식들에게 재산상속을 확실히 하지 않은 것과 연관이 있다”면서 “증자 참여에 명예회장이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어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정명예회장을 직접 겨냥했다.

▽현대투신 부실해소〓이기호 경제수석은 3일 정부가 파악한 현대투신의 부실 규모와 해소방안을 명확히 밝혔다. 투신의 부실 1조2000억원을 현대가 모두 책임지고 빠른 시일안에 해결하라고 주문하면서 타협의 여지로 비상장사의 주식 매각을 제시했다.

▼비상장株 매각도 거부▼

이수석의 발언이 몽헌 회장 보유의 현대택배 주식(21.9%)을 팔아 사재출자를 하라는 말인지 생명 정보기술 현대아산의 주식을 팔아 법인명의로 출자를 하라는 뜻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현대는 이 부분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 현대투신 이명규 이사는 “현대투신증권을 코스닥시장에 등록해서 7000억원을 마련하고 11월에 2000억원의 외자를 유치하면 부실은 저절로 해소되는데 정부가 앞장서서 현대투신이 부실해서 곧 쓰러질 회사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현대투신증권의 자구책에 대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대는 또 이번 문제는 투신측이 현대투신운용 자산(고객 신탁계정)을 담보로 증권금융으로부터 빌려쓰고 있는 연계차입금(일명 연계콜) 3조원을 연말에 해소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인데 정부측이 현대투신 부실 문제로 확대시키고 있다고 원망했다.

▼연계콜 연장엔 의견접근▼

▽연계콜 문제〓정부와 현대가 의견 접근을 보인 유일한 부분. 정부는 IMF측과 협상, 연계콜 문제를 현대투신 주장대로 2002년가지 연장해줄 의사를 밝혔고 IMF측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현대가 투신의 부실을 해소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만 현대측 요구를 들어준다는 입장.

이에 대해 현대는 “연계콜 해소 시기만 연장해주면 그룹의 지원없이 나머지는 투신이 알아서 독자적으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이 역시 사재출자 및 부실해소와 연계된 문제.

<박래정·이병기·최영해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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