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심규선/韓日정상 "서로 바빠서…"

  • 입력 2000년 4월 25일 19시 49분


5월말 또는 6월초 일본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일 정상회담이 무산됐다. 이 회담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전총리가 요청한 것이다. 7월 오키나와(沖繩)에서 열리는 서방선진7개국(G7)과 러시아의 G8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대통령으로부터 허심탄회한 의견을 듣겠다는 것이 오부치 전총리의 의도였다.

그러나 양국에서 모두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일본에서는 오부치 전총리가 쓰러지면서 모리 요시로(森喜朗)내각이 출범했다. 6월 초에는 중의원이 해산되고 같은 달 하순에 총선거가 실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북한과 합의했다. 김대중(金大中)정부의 집권후반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빅이벤트이기 때문에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런 양국의 상황 때문에 한일 정상회담은 ‘자연스럽게’ 무산됐다. 양측 모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일 정상회담의 무산은 그렇게 가볍게 받아들일 문제가 아니다.

모리신임총리는 곧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당선자와 만난다. 그는 이어 이달 말부터 내달 초 황금연휴기간에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미국의 최고 지도자들과 빠짐없이 정상회담을 갖는다. 일련의 정상회담은 예정에 없던 일로 일본측의 요구로 성사됐으며 모리총리가 상대방 국가를 방문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만큼 일본이 적극적이라는 얘기다.

그런 일본이 오히려 예정돼 있던 한일정상회담에는 그리 애착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국력의 차이라고만 보기에는 어딘가 석연치가 않다. 모리총리의 개인적인 관심도 작용한 것 같다.

모리총리는 외교경험이 없으며 한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검증된 적도 없다. 그런 점에서 한일 정상은 빨리 얼굴을 맞댈 필요가 있다. 집안일이 바쁘다고 해서 주요국가의 변화에 대처하지 않는 것은 결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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