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한국공항공단 직원 릴레이 봉사

  • 입력 2000년 4월 21일 20시 09분


“오늘 할머니께 들러서 이것 좀 전해주세요.”

구재삼(丘在參·한국공항공단 소음대책부장)씨는 12일 부인이 건네준 쌀 한포대와 김치 멸치 등 반찬 꾸러미를 들고 집을 나섰다.

오후 6시반경 구씨가 퇴근길에 찾은 곳은 경기 김포시 고촌면 대준마을을 지나 야트막한 야산에 있는 이옥녀(李玉女·80)할머니의 집.

며칠째 전화를 잘 받지 않아 할머니 안부를 걱정했던 구씨는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이 할머니는 노환으로 관절이 좋지 않아 몇달째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혼자 사는 ‘거택(居宅)보호 노인’.

구씨는 올 초 자신이 담당하는 소음대책 업무 때문에 공항 인근지역인 대준마을 주민을 만나고 다니다 두달전 남편을 잃고 자녀도 없이 쓸쓸히 지내는 할머니를 알게 됐다.

이장에게서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들은 구씨는 과일 한봉지를 사들고 찾아갔다가 자신의 조그만 관심에 할머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말동무를 자청하며 자주 만났다.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쌀 또는 과일을 들고 가지만 빈손일 때도 많다. 할머니에게 정말 필요한 건 선물보다 따뜻한 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기를 한달여, 구씨를 옆에서 지켜보던 동료 직원들이 공항 인근의 불우이웃을 돕는 데 동참하기 시작했다.

손종하(孫宗河)경리과장은 선천성 지체장애인인 김주혜씨(55·서울 강서구 신월3동) 모자를 보살피게 됐다. 월급봉투를 조금씩 털어 자신의 정성을 전달하면서 이들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였다.

“김씨가 자신의 불편한 몸보다 정신장애 상태인 아들의 앞길을 걱정하는 모습이 가장 안타깝더군요.” 손씨는 비행기를 좋아하는 김씨의 아들을 위해 공항견학을 시켜줄 계획이다.

안전관리부 김경숙(金敬淑)씨는 간호사 출신답게 경기 부천시 고강동의 염명순 할머니(80)에게 건강상담을 해주며 가까워졌다. 곰살맞은 성격의 김씨가 설거지 빨래 청소를 마치고 나서 방에 들어서면 할머니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김씨는 지난 겨울 염할머니가 집 보일러가 고장나는 바람에 며칠을 썰렁한 방에서 지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잘못인 양 속상해 했다. 그리고 주말마다 할머니와 같이 목욕탕에 가겠다고 약속했다.

처음에 낯선 이의 친절을 부담스러워 하던 염할머니는 어느날 김씨가 노인성 신경통을 앓고 있는 자신의 다리를 주물러 주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들려줄 때 조심스레 말했다. “내 손녀딸이 돼 줄래”라고.

할머니가 마음의 문을 열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 김씨는 “그러죠”라고 흔쾌히 대답한 뒤 자신의 휴대전화와 집 전화번호를 적어놓았다. 급한 일이 생기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뜻이었다.

노인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불우한 공항 이웃’과 자매결연을 맺고 물심 양면으로 돕는 공항공단 직원들은 구씨와 김씨를 시작으로 이제 20여명으로 늘었다.

공단도 직원들의 소리없는 ‘릴레이 봉사활동’에 화답했다. 불우이웃은 물론 보육원이나 노인정을 찾아가 낡은 집과 시설을 골라 안전점검을 한 뒤 문 창틀 전기시설을 고쳐줬다.

이달부터는 강서구 신월동과 경기 부천시 고강동의 5개 초등학교와 무료 급식소에 결식아동과 영세민을 위한 급식비를 지원키로 했다.

구씨는 “주위의 불우이웃을 보면 한순간 안타깝다고 느꼈을 뿐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작은 관심과 손길만으로도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게 기쁘다”고 말했다.

<송상근기자> 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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