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同調化' 최근심화]증시 갈수록 '美 닮은꼴'

  • 입력 2000년 4월 18일 19시 29분


오전 6시 전날의 미국 증시 종가(終價) 분석으로 하루를 시작해 오후 10시반 미국증시 시가(始價) 확인으로 일과를 끝내는 주식투자자들이 많아졌다. 국내 증시가 미국 증시 추세를 닮아가는 ‘동조화(同調化)’ 현상이 투자자들의 일상생활에 침투해 있는 것이다. 미국 증시의 급반등 다음날인 18일에도 코스닥지수는 비록 하락했지만 거래소의 반도체주와 통신주가 힘을 쓴 것을 보면 전날 미국증시의 장세를 그대로 빼닮았다는 것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동조화〓작년 10월 이후 국내증시의 특징으로 굳어진 동조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특히 4월 들어 코스닥지수의 경우 일간변동률이 장중변동률보다 큰 예외적인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동원경제연구소 정훈석 주임연구원은 “이는 전날 미국 주가의 등락이 장중에 생기는 국내재료보다 지수에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증시의 수급 여건이 악화된 올해 들어서는 미국 주가가 떨어질 때는 함께 떨어지다가도 미국 주가가 오를 때는 따라 오르지 않는 ‘선별적 동조화’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동조화엔 이유가 있다〓동조화가 국내 투자자들의 눈치보기에서 기인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증권가의 분석이다.

무엇보다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 완전개방으로 외국인 투자비중이 높아진 것이 동조화의큰 원인이다. 특히 작년 10월 이후 주로 각국 증시의 기술주를 공략하는 글로벌펀드 및 인터내셔널펀드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업종별 동조화가 극심해졌다. 주식투자자가 이들의 동향에 촉각을 세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수출품의 대종을 이루는 반도체, 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 무선단말기 등 정보통신제품의 대미 수출의존도가 높은 사실도 한미 증시간 연결고리다.

정보기술혁명에 바탕한 미국식 ‘신경제’를 국내 경제 회복 모형으로 받아들인 것도 동조화의 또 다른 배경. 새로 증시에 등장해 적정주가 판단 기준이 없는 기술주의 경우 미국내 동종 업종 주가를 일정비율로 할인해 적정주가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기술주의 등락에 따라 국내주가의 등락이 좌우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동조화의 허점〓사업내용이 같다고 주가까지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 이유는 없다. 국민경제상 위치, 각국의 거시경제 여건 등이 다르고 사업모델이나 수익모델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한증권 리서치센터 정의석부장은 “예를 들어 야후와 야후코리아는 똑같은 내용의 사업을 하는 계열사들이지만 고객 기반이 다르고 수익원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잣대로 주가를 평가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막연히 동조화만 믿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사실은 코스닥시장에서 명멸한 숱한 테마주들의 운명에서 입증됐다. 올 들어 미국증시에서 테마로 등장했던 바이오칩, 반도체장비주, 보안솔루션주 등이 코스닥시장에서도 한때 용틀임했으나 결국에는 급락하고 만 것. 한마디로 기업 내실의 차이가 컸다.

▽동조화 계속될까〓요즘 기업간 전자상거래가 하반기의 유력테마로 부상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이 유망주로 추대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테마도 자칫 동조화가 빚어낸 함정에 그칠 공산이 크다. 기업간 전자상거래는 미국에서 이제 막 시장구도가 잡히기 시작한 사업영역이고 국내에서는 사실상 해당기업이 전무한 업종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동조화는 현재도 진행중이며 정도는 약해질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우증권 이종우 연구위원은 “이번 조정기를 거치면 동조화가 점차 약화되겠지만 국내 증시가 일정 발전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는 동조화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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