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동철/"JP, 民意따라 가시죠"

  • 입력 2000년 4월 18일 19시 28분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 JP의 정치적 명운도 이제 막바지에 온 듯하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정치 전면에 등장한 지 만 39년. 수시로 닥쳐온 정치적 풍파 속에 온갖 영욕을 겪으며 이를 헤쳐왔지만 새 천년의 첫 총선은 황혼 길에 들어선 JP에게 너무나 뼈아픈 패배를 안겼기 때문이다.

물론 JP 개인적으로야 2000년 5월30일 16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면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 박준규(朴浚圭)국회의장에 이어 한국의회정치 사상 최다선 타이 기록인 9선 의원으로 자리매김하는 영광을 안게 된다.

그러나 이런 영광의 뒤안길은 너무나 쓸쓸하다. 88년 13대 총선 때 민정당 평민당 민주당 공화당 등 4당의 지역구도에 힘입어 충청권을 장악하며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던 JP에게 이번 총선에서 충청권은 주인을 물어버린 호랑이역을 맡았다.

“호랑이는 평소 먹이를 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자신을 관리해주는 사육사를 따르다가도 조금만 비위에 거슬리면 물거나 저항한다. 이를 교훈삼아 국민을 평소 호랑이처럼 생각해야 한다.”

트루먼 전미국대통령의 이 말을 정치에 입문한 이후 항상 뇌리에 새겨 왔다고 밝혀온 JP는 총선 패배 이틀 뒤 청구동 자택을 찾아온 자민련 인사들에게 또 다시 이 얘기를 인용했다. 그러면서도 JP는 강한 정치적 재기 의지를 감추지 않았다는 게 자민련 인사들의 전언이다.

이런 JP의 ‘불굴의 의지’는 ‘2인자’ 또는 ‘캐스팅 보트’역만을 맡아왔던 그의 정치 전력(前歷)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비록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17석의 의석뿐이지만 여야 아무도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생존의 길’은 그래도 있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그리고 원내 1당으로의 도약에 실패한 집권 여당인 민주당도 이를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문제는 JP가 호랑이처럼 생각해왔다던 국민이 그를 버리는 결단을 내렸는데도 이를 애써 외면하려는 그의 태도다. JP의 이런 정치인식은 노욕(老慾)이라는 말을 오히려 가벼워 보이게 만들 정도다.

JP는 90년대 초반부터 자신의 퇴진을 겨냥한 세대교체론이 정치권의 화두(話頭)로 떠오를 때마다 “…세월을 거듭하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잃을 때 비로소 늙게 된다…”라는 미국시인 새뮤얼 울멘의 ‘청춘’이라는 애송시를 읊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적이 많았다.

그러면서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길다. 그러나 나는 약속한 일이 있다. 잠들기 전 몇 마일을 더 가야한다. 잠들기 전 나머지 몇 마일을 더 가야 한다”는 미국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도 단골메뉴로 읊조려 왔다.

물론 JP가 ‘가야할 길이 남았는지’는 개인차원의 판단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바꿔’열풍에서도 입증됐던 총선 민의(民意)는 JP도 이제는 정치적 거취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쪽임이 분명하다.

JP에게 ‘남은 몇 마일’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골프나 즐기면서 남은 몇 마일을 갈 것을 충고한다면 큰 실례를 범하는 일일까.

김동철<정치부 차장> eastph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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