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International]유럽 反美감정 확산

  • 입력 2000년 4월 11일 19시 50분


프랑스의 서점에 가면 제목만 봐도 미국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음을 알 수 있는 책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일부만 예로 든다면, ‘아뇨, 괜찮습니다. 엉클 샘’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 ‘누가 프랑스를 죽이고 있는가? 바로 미국의 전략이다’ ‘미국식 전체주의’ 등이 바로 그런 책들이다.

이 중에서 ‘아뇨, 괜찮습니다. 엉클 샘’은 미국에서 무장을 한 국민의 숫자가 기록적으로 늘어나고, 사형제도가 용인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입법부는 핵실험 금지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그런데도 미국은 전세계를 휘둘러 자기 뜻대로 끌고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다른 책들의 내용도 대동소이하다. 유럽에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위험한 존재로 보고 미국이 세계를 전부 미국화하려고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유럽의 엘리트들 역시 일종의 도덕적 잣대를 이용해서 미국식 모델을 비판하고 있다.

물론 유럽인들은 언제나 소일거리 삼아 미국을 조롱했다. 특히 프랑스 사람들이 미국을 조롱하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최근의 반미 주장은 미국에 대한 과거의 비판보다 더 매섭고, 과거에 볼 수 없었던 미국에 대한 두려움마저 드러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보도기관들을 위한 여론조사 단체인 CSA 오피니언의 로제 회장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었다”면서 “미국이 경제적 힘을 이용해서 경제적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적 변화까지도 강요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매우 크다. 사람들은 미국이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할 능력을 갖고 있으며, 그 가치관이 유럽인들의 가치관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인들은 여러 분야에서 미국을 위협적인 존재로 보고 있다. 우선 군사적인 부문을 보면, 유럽인들은 코소보 사태에 미국이 개입한 것을 두고 미국이 대서양 건너 자신들을 도와줬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마음대로 조작했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유럽은 미국이 미국적인 가치관을 강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에 호르몬이 첨가된 미국산 쇠고기를 유럽이 수입하지 않기로 한 데 대한 보복으로 미국이 유럽산 치즈와 오리의 간 요리에 대해 수입세를 물리기로 결정한 것도 유럽인들의 이러한 생각을 더욱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유럽의 보통 사람들은 미국의 영화, 미국의 음악, 미국의 패션, 미국의 패스트푸드 등 미국적인 것들을 상당히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 프랑스에서 매주 발표되는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최고의 판매율을 기록하고 있는 소설 중 절반 이상이 미국 소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미국 문화를 받아들이면서도 유럽인들은 미국을 점점 더 호전적인 국가로 보고 있다. 이는 지난 몇 년 동안 CSA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들에서도 확인된다. 예를 들어, 지난해 4월에 실시된 조사에서는 미국의 초강대국 지위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는 프랑스인이 조사대상의 68%였다. 반면 미국이 뭔가 찬양할만한 것을 갖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30%에 불과했다.

독일인, 스페인인,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영국인들의 대미의식을 비교한 조사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유럽인들 중에서는 이탈리아인들이 미국에 대해 가장 호의적이었으나, 그들 역시 미국식 모델에 대해 심각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반미주의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는 프랑스의 소설가 파스칼 브루크너는 “미국이 이처럼 큰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받았던 적은 없다”면서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미국은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 우리는 러시아인들의 도덕적 문제를 비판하지 않는다. 그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부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의 반미의식의 원인으로 미국인들이 해외에서 사업을 하면서 유럽인들이 쉽게 수긍할 수 없는 경영전략을 채택하는 것을 꼽는다. 미국인들은 토론을 짧게 하고 재빠른 결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유럽인들은 토론을 오래 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미국인들이 유럽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으며, 유럽에 대해 배울 생각도 없는 것을 감정 악화의 중요한 요인으로 꼽는다. 브루크너는 자신이 샌디에고에서 살 때, 프랑스에는 19세기 이래로 여왕이 존재한 적이 없는데도 집주인이 여왕의 안부를 물었다고 말했다. 유럽인들은 미국인들이 너무 자신감에 넘쳐 있어서 자기들이 세계에서 최고이며 모든 사람보다 앞서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모델을 배워 따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http://www.nytimes.com/library/world/europe/040900europe-u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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