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CEO의 비전을 듣고 싶다

  • 입력 2000년 3월 19일 20시 38분


일본에서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발언권이 강하다. 총리 직속으로 설치된 산업경쟁력 회의를 비롯해 일본경제 발전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주요 기구의 핵심멤버는 기업인이다.

‘1999년 일본재계인상(賞)’ 수상자로 올해 초 선정된 오쿠다 히로시(奧田碩)도요타자동차회장. 일본경영자단체연합회장인 오쿠다가 수상자가 된 결정적 이유는 활발한 대외발언이었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만능’이라는 주장을 비판하고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를 강조해 왔다. ‘승자에게 정당한 보수가 돌아가는 만큼 패자부활도 가능한 사회’를 역설한 그의 주장은 한국 미국 등에도 크게 소개되면서 그를 국제적 저명인사로 만들었다.

제조업과 정보기술(IT)결합을 일본경제의 새 과제로 내놓은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소니사장. 그는 지난해 한 기업인 세미나에서 디지털경제와 주식시가총액주의, 가치창조경영 등 5가지를 21세기 경제의 핵심키워드로 제시, 일본사회에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도 비슷하다. 잭 웰치 제너럴일렉트릭(GE)회장이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회장의 말 한마디는 바로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는다. 미국이나 일본기업이 경영과 관련된 중요정책을 발표할 때는 대부분 CE0의 기자회견이 잇따른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최고경영자의 발언을 접하기 쉽지 않다. 경영전략 발표는 홍보실을 통해 흘러나오는 보도자료 수준에 머물기 일쑤다. 사회경제적 현안에 대한 CEO의 의견개진은 더 찾아보기 어렵다.

기업이 권력이나 관청의 눈치를 봐야 하는 한국적 현실에서 말 한마디 잘못 꺼냈다가 불이익을 보지 않을까 하는 피해의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CEO들의 육성을 접할 때가 대통령주재 재계인사 만찬에서 나오는 ‘용비어천가’ 수준이라면 분명히 비극이다. 기업인의 생생한 숨결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듣고 싶다.

권순활기자<경제부>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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