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민병욱/멋진 말

  • 입력 2000년 3월 17일 22시 37분


세상에는 참으로 멋진 표현이 많다. “사랑이란 절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란 표현은 아련한 사랑 경험을 듣는 이에게 가슴 시리게 전해준다. “정치를 직업으로 가지면서 정직할 순 없다”는 말도 한마디로 정치인을 정의한 기발한 표현이다. 천부적 자질에 피나는 노력을 더해 성공한 사람이 고뇌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도 감동을 안긴다. 미국 프로농구 대스타였던 마이클 조던은 “내가 던진 슛 가운데 그물을 흔든 것보다 실패한 것이 더 많았다”고 했다. 패배해 좌절하는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는 멋진 말이다.

▷그 조던이 며칠 전 워싱턴포스트지에 광고를 냈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후보 지명전에서 앨 고어부통령에게 패한 빌 브래들리 전상원의원을 격려하고 갈채를 보내는 내용이다. “브래들리, 당신은 졌지만 미국의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 당신의 정직함 성실성 품위와 불우한 사람에 대한 이해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다. 당신의 예비선거 과정은 미국인의 삶에 오래오래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멋진 말이요, 행동이다.

▷같은 날 한국의 신문에는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저질언어들이 실렸다. 보통 20여명씩 대변인단을 둔 여야 4당이 쏟아낸 말들이다. “망나니처럼 고향 어른도 몰라보는 정권의 똘마니”란 표현은 그래도 점잖은 편이다. “임신한 이웃집 부인 뱃속의 아이까지 기형아…”라거나 “철없는 ×이 길거리 약장수도 쓰지 않는 험담…” 운운하는 데는 기가 탁 막힌다. 다른 정당을 ‘콩가루 당’이니 ‘천민당’이라고 깎아내리는 것도 예사다. 이런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국회에 함께 앉아 국사를 논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미국처럼 멋진 말로 정치와 정치인을 부추기는 것은 우리에겐 무지갯빛 꿈에 불과한 것일까. 그저 듣기 역겨운 말이나 나오지 않는 정도라면 유권자들이 지금처럼 속상해 하지도 않을 것이다. 돈으로 표를 사려는 사람, 지역감정으로 나라를 찢어 당선되려는 사람뿐만 아니라 말의 폭력을 일삼는 사람도 퇴출대상에 포함시키는 게 어떨까. 하긴 그러면 국회에 들어갈 사람이 한 명도 없을지 모르지만….

<민병욱논설위원> 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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