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재건축비리 수법-행태

  • 입력 2000년 3월 15일 19시 21분


15일 서울지검 동부지청에 적발된 재개발사업 비리는 재개발조합 간부와 시공사 용역업체가 한통속이 되어 상습적으로 금품을 주고받는 뇌물 커넥션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시공사와 설계회사 등은 설계 변경 등 각종 명목으로 부당이득을 올리기 위해 조합 임직원을 ‘구워삶고’ 조합 임직원은 이들과 결탁, 조합 업무를 떡주무르듯 하면서 이권을 미끼로 치부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조합 간부와 시공사 설계회사 등이 뇌물을 주고받는 명목과 수법도 공사 과정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이뤄졌다.

신당3구역 재개발조합 총무 양모씨는 96년 재개발사업 착수 당시에는 변변한 재산조차 없었다. 그러나 구속 직전 그는 아파트 2채와 고급 승용차 등 수십억원대의 재산을 소유한 재산가로 호화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업체들은 유리한 조건으로 수주계약을 따내거나 공사 단가를 부풀려 이득을 얻고 조합 간부들은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이익의 일부를 리베이트 명목으로 챙기는 식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밀월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 과정에서 시공 용역업자들은 조합이 결성되기 이전인 추진위단계에서부터 간부들에게 접근해 자신들과 가까운 사람들을 조합의 임원으로 내세운 뒤 판공비 업무추진비 등의 명목으로 매월 1500만∼2000만원을 관행적으로 조합에 지급해왔다.

조합 임직원으로 선출되면 매월 100만∼200만원의 봉급 외에 업체가 내놓은 돈을 나눠 가졌다. 여기에다 상가분양권 취득, 인기층 당첨 등 부당이권을 챙기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어 조합장 선출시 수천만원의 금품이 살포되는 일이 비일비재였다.

재개발조합장과 임원들은 업자선정 분양대금관리 분양가인상 설계변경 등 모든 이권에 개입, 시공사 등과 결탁해 거액의 뇌물을 챙겼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공사비 인상 부담과 부실 공사의 위험 등은 모두 일반 조합원이 떠맡게 된다는 것이 검찰 설명. 실제 5100여세대가 4월 입주 예정인 신당 제3구역 주택재개발조합의 경우 3차례에 걸쳐 분양가가 인상됐고 이 과정에서 시공사들은 건축비를 인상해주지 않으면 공사를 중단하겠다며 수차례 조합원을 협박하기도 했다.

재개발사업을 따내기 위해 혈안이 된 건설업체들은 경쟁적으로 조합간부들에게 접근, 향응이나 금품을 제공하고 심지어 자신들의 편을 만들어 조합간부에 앉히는 등 치밀한 작전을 벌여왔다.

조합추진위 단계에서 조합 결성까지 제반 행정업무를 대행해주고 5억∼10억원가량의 용역비를 챙기는 행정용역업체들도 사업초기부터 조합임원에게 접근, 거액의 금품을 제공해 왔다. 조합 임원들은 또 이들 업체들이 구청의 처분 지연 등을 이유로 용역비를 올리는 것을 눈감아주고 다시 금품을 챙겨 왔다.

설계용역업체 선정도 마찬가지. 재개발 재건축조합의 설계비가 10억∼40억원대에 달해 조합추진위 단계에서부터 설계수주와 관련, 수천만∼수억원대의 금품이 오갔다. 실제로 보문1구역 조합 이사로 있던 이모씨는 96년 12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설계회사인 S건축사무소로부터 설계용역 수주 명목으로 8000만원을 받았다. 또 조합 임원들이 설계변경 과정에서 설계비를 증액하거나 설계비나 감리비 결제를 까다롭게 해 은근히 설계회사에 금품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가 하면 시공사는 조합원들의 이주대책비로 수백억원을 무이자로 빌려준 대신 이자부담을 보전하기 위해 건축비를 인상하면서 이를 무마하는 대가로 조합 임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해왔다.

조합임원들이 일반분양 아파트의 대금을 받아 시공회사에 지급하기 전 조합 결의를 거치지 않고 증권투자와 사채놀이 등에 유용하기도 한다. 동부연립 재건축조합장 최모씨와 총무 김모씨 등은 이같은 수법으로 각각 3억5000만원과 1억원을 유용, 주식투자에 사용했다가 이번에 적발됐다.

이번 수사에선 관할구청도 일정한 대가를 받고 각종 인가 승인과정에 특정조합이나 시공사에 유리하게 뒤를 봐준 사실이 포착돼 검찰은 감독 관청도 비리사슬의 한 축을 이루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선대인기자> 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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