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핫라인]개그맨 심현섭/'사바나의 아침' 후속편 준비

  • 입력 2000년 3월 12일 19시 49분


KBS2 ‘개그콘서트’(토 오후6·50)가 배출한 개그 스타 심현섭(30)은 최근 심각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다. “‘개그 콘서트’의 ‘사바나의 아침’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지만 이제 그 코너를 접을 때가 된 것 같네요. 일주일 내내 연습해서 녹화해도, 정작 방송에서는 절반이 잘려나가지 않나…. ‘약발’이 다 한 것 같아요.”

그렇다고 이 잘 나가는 ‘사바나 추장’의 ‘약발’마저 의심할 수는 없다. 요즘 심현섭은 ‘개그콘서트’의 좌장인 백재현 등과 함께 비장의 카드를 준비 중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마피아의 새벽’(가제). 90년대 초반 그의 대선배 격인 임하룡 등이 주축이 된 ‘도시의 천사들’을 패러디할 계획이다. 이 역시 ‘사바나의 아침’처럼 철저히 개그맨들의 ‘개인기’(성대모사, 애드리브 등을 일컫는 방송 용어)에 의존하는 포맷이다. ‘빰바야∼’ 등에 버금가는 ‘필살기’를 준비 중인 것은 물론이다. “독하게 마음 먹고 아이디어를 찾기보다는, 일상 생활에서 흘러가면서 스치듯 웃기는 것이 개그의 핵심”이라는 그는 요즘 주로 동료들과의 식사 중에 한 두 마디 툭 던지며 반응을 체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심현섭의 표정은 여전히 개운치 않아 보였다. “그래요? 아마 개그맨으로서의 정체성이 오로지 개인기에 집중된 데서 오는 부담감이겠죠.” 그만큼 그는 콩트에만 유달리 강하고 토크나 표정 연기는 아직 검증받지 못했다. 출연 중인 KBS2 ‘시사터치 코미디파일’(목 밤10·55)에서도 특별한 멘트보다는 그 특유의 스피디한 성대모사로 승부를 짓는다. 이 점에서는 ‘개그콘서트’의 연출자 박중민PD도 “그가 가만히 말할 경우 오히려 썰렁할 때도 있다”며 동의한다.

심현섭 스스로 구분하는 개그맨의 유형은 대략 세 가지. 자신을 포함한 개인기 형(엄용수 등), 90년대 개그계를 장악한 토크 형(이홍렬 서세원 주병진 등), 그리고 80년대 ‘봉숭아 학당’의 이창훈이나 ‘영구’의 심형래로 대표되는 연기 형. 그는 남희석은 토크와 개인기를 두루 갖췄고, 활동을 중단하고 있는 신동엽은 세 가지를 모두 갖췄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심현섭은 억지로 자신에게서 다른 캐릭터를 끄집어낼 생각은 없다. “모처럼 개그 프로들이 버라이어티 프로와는 달리 개그맨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로 꾸며지는데, 내가 단지 ‘개그의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 제 색깔을 버릴 이유가 없다는 거죠.”

그렇지만 ‘인력난’에 허덕이는 방송사가 모처럼 나타난 개그 스타를 그냥 둘 리 만무하다. 심현섭은 대선배인 이경규와 함께 4월 중순부터 평일 심야시간대에 방송될 성인 취향의 토크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KBS2 ‘이경규, 심현섭의 나이트쇼’(가제)의 진행을 맡게 된다. 이제까지 심현섭이 보여준 개그 코드와는 분명 다른 포맷이다. “긴장되네요. 제 캐릭터를 유지하면서 입심 좋은 이경규 선배의 특징을 잘 살려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소외됐던 ‘몸 개그’의 고수로 스타덤에 올랐다가 다시 ‘제도권 개그’인 ‘말 개그’에 뛰어든 셈이다. 심현섭이 ‘기성 개그’에서 자신의 특기를 어떻게 살려갈지 두고 볼 일이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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