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명재/하늘만 보는 高유가 대책

  • 입력 2000년 3월 9일 19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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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가뭄에 갈라지는 논바닥. 그러나 속수무책. 농부들은 속이 타들어가면서도 하늘을 원망하는 수밖엔 도리가 없었다. ‘하늘이 시키는 대로’ 농사를 지어야 했던 ‘천수답(天水沓) 농법’ 시절의 이야기다.

저수시설이 많이 확충돼 이제 천수답은 많이 사라졌다지만 요즘 고유가로 허둥대는 우리정부나 국민의 모습을 보면 마치 ‘천수답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8일 정부가 고유가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보인 모습이 딱 그랬다.

―앞으로 원유가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솔직히 말해 모르겠습니다. 이달 말 석유수출국기구(OPEC)회의를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겁니다.”

―어떤 대책을 준비중인가요.

“그건 그 회의가 끝나봐야….”

한마디로 ‘산유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못 들어가니 그저 기다리자’는 것이다. 정부의 답답한 심정이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비산유국의 처지. ‘강 건너’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구경꾼 신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게 전부일까. 과거 월가 등의 국제 투기자본 움직임에 둔감했다가 뼈아픈 일격을 당한 경험을 생각한다면 우리 경제의 흐름을 좌우하는 중요변수인 유가의 흐름에 이렇게 어두워도 될까.

“원유가의 동향은 선진국들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하소연을 하기 전에 국제 원유투기자본의 움직임 등을 파악하는 발빠른 노력이 아쉽다.

국민도 할말은 없다. 두차례의 끔찍한 오일쇼크에도 우리 국민은 별 ‘쇼크’를 받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인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높은 에너지 소비율을 ‘자랑’한다. 산업구조가 다른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같은 비산유국인데도 일본은 우리처럼 큰 충격 없이 오일쇼크를 이겨냈다는 사실을 되새겨볼 일이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의 정부나 국민치고는 정말 걱정되는 천수답형이다.

이명재 <경제부>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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