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상용/공직자 부당 株테크 엄단을

  • 입력 2000년 3월 2일 19시 57분


유치한 공직자는 현금으로 받은 뇌물로 축재를 한다. 그러나 세련된 공직자는 직무상 취득한 미공개 정보나 상납받은 뇌물성 고급정보를 이용해 재산증식을 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고위직일수록 비리 공직자의 축재수단은 주로 후자에 속한다. 고급 내부정보는 돈처럼 가치가 있지만 돈 그 자체는 아니므로 금융실명제를 피할 수 있고 내부자거래는 규제가 허술하니 적발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좋은 방법이다. 일부 공직자가 이른바 주(株)테크로 거액의 재산증식을 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다수 국민은 ‘혹시나’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민간경제에 대한 국가의 영향력이 아직도 막강한 시대이고 주식투자의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시기이기에 더욱 그렇다. 특히 국회의원들의 소속 상임위 관련 업체들의 주식거래 진상이 밝혀지면서 ‘혹시나 했더니 역시’라는 자조의 숙덕거림이 풍미한다.

내부자거래는 왜 규제하는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증권매매를 하면 정보가 가격에 신속하게 반영되므로 증권이 ‘제값’에 거래된다. 내부자거래는 시장효율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나라에서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증권거래를 형사처벌하는 이유는 내부자거래란 바로 공평성의 원칙에 어긋나고 결과적으로는 시장에 대한 신뢰상실과 시장위축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부당국의 내부자거래 규제 노력은 평등의식이 충만한 우리 국민의 법 감정과는 괴리가 있었다는 판단이다.

사실 내부자거래를 규제하는 증권거래법 제188조는 미국만큼 엄하다. 내부자 및 공직자와 같은 준(準)내부자는 물론이고 정보수령자에게도 미공개 주요 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위반시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실현이익 또는 회피손실의 3배 내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내부거래로 손실은 입은 사람에게는 손해배상 책임도 져야 한다. 미국과 법제도가 유사한 영국보다도 더 엄한 민형사상 제재를 받게 돼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내부자거래가 횡행한다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외국인투자자들은 한국의 내부자거래가 매우 야만적인 수준이라고까지 혹평한다.

엄격한 규제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자거래가 횡행하는 이유는 물론 내부자거래를 적발하기 어려운 수사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준사법권을 갖고 있는 미국의 막강한 증권관리위원회(SEC)도 내부자거래를 제보하면 내부자가 납부하는 벌금이나 과징금의 10% 한도 내에서 보상하는 현상금제도를 운영하겠는가. 내부자거래를 근절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규제법규의 강화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고, 법규를 만들고, 이를 집행하는 전문가 집단이 대부분 규제대상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공직자의 내부자거래는 일반인의 내부자거래에 비해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동양과는 달리 계약문화가 발달한 서양에서는 이해상충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가 잘 발달돼 있다. 국가가 시민에게 요구하는 최소한의 법규가 있고 대부분의 사회조직이 구성원에게 요구하는 명문 윤리규준이 있다. 법규와 윤리규준의 준수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적발된 위반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시스템 또한 잘 발달돼 있다.

공직자의 부당한 주테크를 차단하기 위해 일차적으로는 법을 보다 엄정하게 집행해야 한다. 그러나 법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공공기관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돼야 한다. 이제 재산변동 신고 대상인 공직자들이 속한 기관은 명문 윤리규준을 만들고 신임 공직자에게는 윤리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공직자간의 상호감시와 준법감시인 등의 내부감사를 포함하는 내부통제시스템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공직자의 부당한 주테크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민주적 시장경제의 창달과 생산적 복지사회의 건설을 지향하는 국민의 정부 의지를 실험하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박상용(연세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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