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진우]유권자의 '육모방망이'

  • 입력 2000년 3월 2일 19시 57분


총선이 꼭 40일 남았다. 이쯤에서 중간정리를 해보자. 1월10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을 시작으로 총선시민연대와 정치개혁시민연대가 공천부적격자 명단을 잇따라 발표한 이후 민주국민당이 간판을 내걸게되기까지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가.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엉클어져 버렸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언뜻 갈피를 잡기 어렵다.

▼겉 다르고 속 다르고▼

애초 시민단체들의 낙천 낙선운동에 대한 3당의 반응은 외견상 매우 달랐다.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과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시민단체 의견을 크게 수용할 듯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DJ는 시대의 흐름을 실정법으로 막기는 곤란하지 않느냐며 사실상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보스인 김종필(金鍾泌·JP)명예총재가 은퇴권고를 받은데다 당의 중진들이 거의 모두 퇴출대상이 되다시피한 자민련으로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던 형편. 거기서 나온 것이 ‘음모론’이니 까놓고 말하면 DJ와 몇몇 민주당 인사들이 시민단체와 짜고 JP와 자민련을 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여기에 이회창(李會昌)총재의 한나라당이 시민단체와 현정권 간에 여러 연줄이 있다는 ‘연계설’로 거들고 나섰다.

그렇다면 시민단체를 아예 ‘DJ 홍위병’쯤으로 치부하고 그들이 내민 낙천자 명단에는 눈 하나 꿈쩍 않겠다는 자민련이야 논외로 치더라도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공천 물갈이폭은 민주당쪽이 훨씬 큰 게 당연할 듯 싶었다. 그러나 시민단체 편을 들었던 DJ는 막상 공천에서는 이상보다 ‘현실’을 따랐고, ‘연계설’로 시민단체에 등을 돌렸던 이회창총재는 현실보다 ‘이상’을 따랐다. 이를 두고 정치력의 차이라고 하는 모양이지만 문제는 그 ‘정치력’이 유권자인 국민을 어지간히 헷갈리게 하는 데 있다.

이총재가 비주류 중진들을 몰아낸 것이 ‘개혁 공천’이라고 주장하려면 근거가 불분명한 ‘연계설’ 따위는 내놓지 말았어야 했다. 여론의 비판을 받는 자파의 몇몇 인물들도 과감히 잘라내야 했다. 그렇지 못한데서 새벽에 김영삼(金泳三·YS)전대통령을 ‘알현’해야 했고, 며칠새 공천탈락자를 재공천해야 하는 우스운 결과를 빚은 것이다.

DJ도 그렇다.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일반도 한결같이 눈살을 찌푸리는 인물들까지 끝내 ‘충성도’를 내세워 끌어안을 양이었으면 적어도 시민단체의 실정법위반은 두둔하지 말았어야 한다.

이렇듯 정치가 겉 다르고 속 다른데서 가치의 혼돈이 야기되고, 그런 와중에 낙천자와 철새정치인 등이 주력이 되어 신당을 급조하고 ‘1인 정당 타파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난센스가 벌어지는 것이다.

▼얻은 게 무엇인가▼

남은 것은 유권자의 심판뿐이다. 그러나 지역주의 광풍에 휩쓸리면 심판이고 뭐고 끝장이다. 저쪽이 똘똘 뭉친다는데 우리라고 가만있을 수 있느냐, 한번 이런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물갈이는커녕 다 죽었던 정치인들이 되살아나고 다시 ‘그들의 세상’을 노래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그들은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부풀린다. 지금껏 불행하게도 많은 유권자들이 이에 부화뇌동해 왔으며 이번 총선에서도 그럴 조짐이 보인다. 더구나 1여(與) 3야(野)가 내세울 것은 지역밖에 없는듯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 이번 선거판이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맹목적 지역감정의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한 바람몰이였던가를 직시해야 한다. 그동안 지역주의로 유권자 개개인이 무엇을 얻었는지 냉철하게 새겨봐야 한다.

며칠전 JP는 “세상에는 정의가 있다. 정의의 육모방망이가 (거짓말을 되풀이하는) 이들을 내리치는 게 세상의 섭리”라고 말했다. 듣는 쪽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말인즉슨 맞는 말이다. 오는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정의의 육모방망이’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감정을 부추겨 오로지 자신의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거짓말을 되풀이하는 구태정치인을 내리쳐야 한다. 그리하여 이번만큼은 정치의 참주인인 유권자가 더 이상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더는 방관해선 안된다.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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