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최고 22만원 교복에 허리휘는 부모들

  • 입력 2000년 2월 16일 19시 31분


한해 150만벌이 팔리는 중고교생 교복에 대해 학부모들이 소비자주권회복 차원에서 단체 구매 움직임에 나서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학부모들은 웬만한 남성정장 한 벌 가격만큼 오른 교복가격의 거품을 빼겠다며 공개입찰을 통한 단체구매에 나섰고 교복업체들은 학교단위의 단체구매를 불허한 교육부의 방침을 들고 나서 생존권차원에서 강력반발하고 있다.

▼마찰 현장▼

16일 오후 경기 안양중 후문의 한 식당에서는 이 학교 신입생들의 교복 치수를 재려는 학부모측과 이를 방해하려는 교복업자들간에 엉뚱한 자리다툼이 벌어졌다.

학부모회측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공개입찰에 낙찰된 업체를 통해 신입생의 교복을 단체주문하려고 했으나 학교 내에서는 치수를 잴 수 없다는 학교측의 반대로 학교후문 식당을 빌리기로 했다. 그러자 교복업자들이 미리 장소를 차지하고 자신들의 교복을 전시해놓는 방법으로 방해에 나선 것. 결국 경찰까지 출동해 교복업자들을 철수시킨 가운데 수백명의 신입생들이 학교 밖 식당에서 교복 치수를 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새학기를 앞두고 교복을 둘러싼 이같은 마찰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문제의 출발점▼

95년 4월 교육부가 교복을 일괄구입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를 근절시키기 위해 학교차원에서 일괄구입하는 것을 금지시키면서 시작됐다. 즉, 교복업체들이 학교별 교복디자인에 맞춰 여러 기성복을 내놓으면 학생들이 이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한 것.

그러나 이는 가격 상승이라는 예기치 않은 문제를 유발했다. 96년을 기점으로 고급화 브랜딩 전략을 들고 나온 대기업들이 대대적인 물량광고와 함께 교복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5년 사이에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뛰었다. 한국 학생복 생산자협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95년 10만원 안팎이었던 교복 동복 한 벌 값은 올해들어 서울 강남에서 최고 22만원대까지 팔리고 있다.

▼단체구입의 부활▼

소비자들의 반격은 대구에서 시작됐다. 98년 대구 도원중 학부모회는 학부모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교복가격의 시장조사에 나섰다. 시중에 나온 교복들에 대한 도매시장 가격과 원가를 조사한 결과 대기업 교복제품의 마진율이 최고 140%에 이를 정도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도원중 학부모회는 이를 바탕으로 최고급 원단을 사용한 제품의 원가를 산정하고 전교생의 단체구매를 위한 공개입찰을 실시, 동복 한 벌의 가격을 11만원대에 계약했다. 지난해 입찰에서는 이 가격은 다시 9만원대로 떨어졌고 하복 역시 6만원대에서 3만원대로 절반이 깎였다.

이런 시도는 다음해 대구 제일여고와 경기 안산중 학부모회의 공동구매로 이어졌고 올해는 경기 안산 군포지역 60개 중고교가 집단적으로 공동구매 움직임을 보이는 등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업체들의 반발▼

제일모직 아이비, 선경 스마트, 새한 엘리트 등 소위 교복업계 빅 3의 대리점을 중심으로 한 교복업체들은 “학부모들의 단체구매에 대한 입찰업체의 덤핑행위로 기존 유통질서를 망가뜨리고 있다”며 생존권차원에서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전국적으로 교복업체 수를 700여 곳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이중 절반 가량은 대기업체의 대리점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대개 한 학교에 6, 7개 업체가 교복을 생산해왔는데 갑자기 공개입찰로 바뀌면 나머지 5, 6개 업체들은 밥줄이 끊기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교복업체 중에서도 교복의 경쟁입찰을 지지하는 업체들도 있다.

모던 캠퍼스의 김동석사장(45)은 “공개입찰을 통한 단체구입이 전학교로 확산된다면 현재 20만원대의 교복가격이 10만원대로 내려가 한해 4500억원이 드는 학부모의 부담이 2250억원이나 절감된다”며 공개입찰제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교육당국▼

교육부는 이와 관련해 지난해 9월 지방교육청으로 보낸 공문을 통해 학생자율구입을 원칙으로 하되 단체구입을 원하는 학부모들이 있을 경우 학교에서 장소를 제공하고 자문에 나서는 등 행정적 지원에 나서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기지방교육청 등 일부 교육청에는 학내에서 단체구매 동의서를 돌리는 행위나 학생별 교복 치수를 재는 행위를 금지시키는 것은 물론 학부모회에서 단체구매에 나서는 것조차 금지시키고 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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