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343)

  • 입력 2000년 2월 7일 19시 57분


그런 일은 나중에 목욕탕에서도 있었어요. 앉은 자세로 수도를 샤워 꼭지로 전환해서 등에다 뿌리고 있는데 문득 아랫배가 찌릿 하면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왔어요. 나는 얼결에 옆구리를 두 손으로 비틀면서 이를 악물고 신음 소리를 냈구요. 한참 뒤에 파도가 잔잔해지는 것처럼 아픔이 물러 가더군요. 몸무게도 많이 빠지고 그렇잖아도 광대뼈가 튀어 나왔는데 볼이 홀쭉하게 패어서는 더 불쑥 나온 것처럼 보여요.

나는 근년에 들어서 나의 일관된 화두였던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모든 사람을 낳아 기른 자. 권력의 절대화와 관료주의에 대하여 로자가 비판했던 근거는 대중에 대한 모성적 사랑이었지요. 근대는 수컷들의 삭막하고 쓸쓸한 갈등과 번민의 시대였어요. 어느 밀폐된 방에서 숨에 지내는 비밀경찰 출신의 늙은 고문자처럼 그것은 황폐하고 외로워요. 잃어버린 권력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는 헤게모니를 되찾거나 지키려고 부릅뜨고 결심하는 음산한 눈초리와, 사랑으로 위장한 메마른 웃음과, 모든 것을 탈취해서 복종시키려는 음험하게 부드러운 표정 위에 감출 수 없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는 저 눈매를 보라지.

케테의 마지막 석판화를 보고 있어요. 나는 학생 시절처럼 그네의 자화상을 자주 다시 보고는 합니다. 특히 투박한 칼질로 거칠게 표현한 늙은 여인의 연민에 찬 얼굴을 봅니다. 그네의 얼굴에는 일차대전에서 전사한 아들의 죽음에서부터 가난한 사람들의 불행에 대한 안타까움이며 동지들과 자신이 받은 박해와 이차대전중에 러시아 전선에서 죽은 손자의 죽음까지에 이르는 긴 고뇌의 여정이 반영되어 있어요. 베를린 시절 마리 클라인 부인이 우리는 이미 케테처럼 작업할 수는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어요. 나는 이렇게 이야기 했을 거예요. 여기서는 사람이 지겨워져서 쫓아내고 달아나고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을 찾아내려고 애를 쓰고 있다구요. 그런데 지금 여기가 클라인 부인의 여기처럼 되었지요. 그래요, 마리와 작별하던 일이 생각나요. 내가 혼자서 베를린의 마지막 겨울을 보내던 구십이 년 겨울에 국립 양로원으로 옮겨 갔어요. 아파트 관리인이 보기에도 그네는 이미 깊은 알콜 중독 증세였거든요. 떠나기 전에 짐을 모두 정리해 놓고는 작고 낡은 수트케이스를 침대 곁에 놓아둔 채 마리는 종잇장처럼 얇은 몸집으로 얌전히 앉아 있었어요. 그네는 헐렁해진 회색 정장을 입었고 펠트 모자까지 쓰고 있어서 무성영화에 나오는 흘러간 여배우 같았어요. 내가 노랑색 장미를 사들고 그네의 방으로 찾아 갔는데 마리는 꽃을 얼굴에 바짝 대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어요. 그러곤 무슨 작별의 말도 없이 주름진 얼굴로 배시시 웃기만 했지요.

다시 케테의 마지막 그림 이야기로 돌아가요. 그건 유언 같은 석판화라고 알려져 있어요. 세 아이를 외투 자락에 가리고 있는 어머니의 형상이어요. 어머니의 얼굴은 거의 중성인 것처럼 보일 정도로 강인하고 힘이 있는 표정입니다. 머리는 아무렇게나 뒤로 빗어 넘겼고 입은 꾹 다물고 있어요. 볼이 패어 광대뼈가 도드라져 보여요. 그네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두 팔을 잔뜩 위로 쳐들었기 때문에 거의 얼굴이 어깨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머니의 두 눈은 단호하고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는 듯 빤히 뜨고 위를 올려다 보고 있어요.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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