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윤계섭/한국경제 안심 이르다

  • 입력 2000년 2월 6일 19시 49분


주가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계와 국내 경제를 예측하고 산업분석을 한 뒤 해당기업의 영업실적을 예상해야 한다. 여기에다 주식에 대한 수요와 공급을 예측해야 하기 때문에 주가를 예측하는 것은 신(神)이 하는 일로 돌려놓기도 한다. 당연히 틀릴 줄 알면서도 주가를 예측하는 이유는 주가를 꼭 맞히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예상되는 투자위험을 극소화하고 투자수익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경제학자들처럼 많이 틀리려면 경제 예측을 왜 하느냐는 비아냥을 듣기가 쉽다. 한국 경제연구소들의 작년 경제수치 예측과 결과를 보면 너무나 큰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경제학자들은 지난 9년간 다음해에는 경기호황이 올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예측하지 못한 장기 불황에 빠져 있고 미국은 예측하지 못한 장기 호황국면에 들어서 있다. 유럽의 많은 경제학자들은 미국의 다우존스 주가나 나스닥지수의 계속적인 신기록을 보면서 미국증시의 붕괴를 걱정하고 있지만 다행히 지금까지는 틀렸다.

미국 경제학자들 역시 정보화 혁명이라는 대세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불안한 기색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낮은 실업률, 극히 안정된 물가, 높은 경제성장률이 사상 유례없이 지속되고 있지만 역시 사상최고인 무역수지 적자가 문제이다. 이제 무역수지 적자에 대해서는 만성적으로 느껴 불감증이 더해가고 있고 금리인상조차 증권시장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마치 거대한 빙산에 다가가는 당시로서는 최고의 설비를 자랑하는 타이타닉호의 만용을 보는 듯하다. 1930년대의 세계적인 공황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해결됐고 경제학 사상 가장 긴 칸드라치에프 파동기간을 이미 넘겼으니 안심해도 될 것인가.

오늘의 주제는 이러한 미국경제에 대한 시각차이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전날밤 미국 주가가 도대체 한국과 무슨 상관이냐고 흥분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것이 바로 세계화의 비애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투자자의 영향이 아주 큰 만큼 미국 주가의 변화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작년에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우등생으로 졸업했다고 자체 평가한 결과는 거시경제 성적표로 인정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왠지 불안한 것은 97년 IMF 위기당시에도 거시경제지표상으로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치던 경제정책 담당자들의 얼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현재의 정책당국자들의 공로와 특히 국민의 적극적인 노력을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경제실적 발표는 결과적으로 많은 국민의 이상기대를 형성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정례적인 춘계투쟁도 못 참고 동계투쟁을 준비하고 있고 기름 가격과 설 물가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하고 있으며 코스닥시장의 주가에 대해서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정당과 사회단체들은 모두 4월의 국회의원 선거에만 집중하면서 IMF위기 해결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국민의 관심을 끌려고 한다.

정부 발표로는 97년 외환위기 때 걱정이었던 단기외채 비중이 아주 낮아졌고 외환보유고가 세배 이상 늘었는데 웬 걱정을 사서 하느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자유화와 외환자유화로 증권투자자금의 규모가 당시 단기외채 규모를 능가하고 있고 이들 자금이 갑자기 빠져나갈 경우 원화가치의 급락은 모든 경제수치를 급전락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최근의 물가안정은 원화가치의 안정적 상승에 힘입은 바 큰데 이는 95년과 96년에도 느꼈던 문제다.

이제 경제정책 당국자들은 IMF위기를 겪고도 제2차 위기를 겪지 않을 세계적인 신기록을 쌓을 계획을 세워야 하고 아울러 미국 경제가 붕괴된다고 해도 우리가 살아 남을 수 있는 튼튼한 경제구조를 쌓을 책임이 있다.

이를 위해 틀린 경제예측이라도 열심히 하면서 위기에 대비할 때이다. 국회의원 선거는 과거 정치에 대한 심판으로서 국민의 몫이고 미래를 담당한 정책담당자들이 승패를 유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국민이 흥분하는 정치화보다는 경제를 아는 정책 당국자들과 국민의 차분한 경제인식이 아쉬운 때이다.

윤계섭(서울대 경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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