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성희/'백신사고' 모두의 아픔

  • 입력 2000년 1월 31일 20시 01분


정부는 지난달 31일 백신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이례적으로 “명백한 MMR백신 접종사고로 드러난 아이가 어제(30일) 사망했다”고 언급했다.

최근 연달아 발생한 4건의 백신 관련 사고 중 보건 당국에 의해 유일하게 백신접종 부작용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밝혀진 이 아이는 생후 16개월된 여자 어린이. 지난달 12일 접종 직후 뇌사상태에 빠져 엄마 아빠도 알아보지 못한 채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다 18일만에 사망한 것이다.

보건 당국자는 “이 어린이는 MMR백신중 홍역균주에 의한 이상반응 때문에 사망했으며 부모는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한 부검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솔직히 말해 기자에겐 사망사실을 공개한 당국의 발표보다는 백신접종 부작용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숨진 것도 억울한데 부검까지 동의한 부모의 의연한 태도에 더 눈길이 갔다. 이 부모는 몇 십만명, 또는 몇 백만명에 한 명꼴로 백신에 의한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으며 이것이 백신 자체의 품질때문이 아니라는 병원측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수용했다.

백신접종에 따른 부작용이 어느 나라에서건 확률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백신사고에 대한 보상금 마련을 위해 백신에 세금까지 물리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의사들의 이런 소견을 믿어주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물론 이런 태도의 이면에는 사고 자체를 되도록 축소하려는 보건 당국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일본도 우리와 유사하기는 하다. 백신 접종 사고 빈발로 많은 부모가 예방접종을 기피하는 바람에 보건 선진국인 일본에서도 볼거리에 걸리는 어린이가 연간 20만여명이 넘고 있다는 소식이다.

개정된 전염병예방법에 따라 작년부터 국내에서도 예방접종 강제규정이 사라졌다. 대신 부모들은 예방접종을 하든, 하지 않든 자신이 선택한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게 됐다.

<정성희기자>shch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