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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월 31일 2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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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중반 이후 학생운동 리더들은 교회에 많이 다녔다. 74년 민청학련 간부들에게 이른바 남한내 좌익 지하당과 연계시켜 중형을 선고한 이후부터 갑자기 눈에 띄는 현상이었다. 좌경으로 찍히면 가망이 없는 현실에서 공안기관의 탄압에 대응한 일종의 자구책 성격이 강했던 것 같다. 또 대학이 더 이상 경찰과 정보원의 마수로부터 울타리 노릇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학에 비해 교회는 사회봉사 기치와 조직면에서 시민적 개혁운동에 적합했고 ‘성역’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요즘 영국계 기독교파인 대한성공회 인사들의 시민운동 활약상이 화제다. 우선 성공회의 김성수(金成洙)주교는 반부패국민연대 회장이다. 성공회대학의 조희연(曺喜4)교수는 총선시민연대를 이끄는 핵심멤버다. 이 대학의 이재정(李在禎)총장은 새천년민주당의 정책위의장으로 발탁됐지만 그 이전부터 서울 노숙자대책협의회장도 맡아왔다. 또 성공회 수녀원은 공천반대자 명단을 작성하는 시민연대측에 철야작업장을 제공하기도 했다.
▷성공회 수녀원이 87년 6월에도 민주화운동의 메카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시민연대의 활동으로 이번에야 널리 알려졌다. 그 영향인지 성공회대학에 칭송받는 민주운동가의 자녀들이 올해 상당수 지원해 합격했다는 소식이다. 성공회 관계자들은 장차 사회봉사와 정치개혁 같은 일에 헌신할 뜻을 품은 젊은이들이 이 학교에 대거 지원했을 거라며 자랑이다. 70년대의 반유신 투쟁이나 87년 6월시민항쟁 당시엔 명동성당 같은 역할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특정 교회만 사회봉사의 짐을 떠맡을 상황이 아니다. 함께 참여하면서 봉사정신도 나누어야 한다.
<김재홍 논설위원> 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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