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승모/"돈부터 걷나"

  • 입력 2000년 1월 26일 19시 08분


“음성적으로 정치자금을 거뒀던 역대 정권들의 정경유착 관행을 과감히 청산하겠다.”

민주당이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온 얘기다. 27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개최할 후원회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좋은 얘기다. ‘검은 돈’을 받지 않고 정치자금법이 허용하는 합법적이고 투명한 돈만을 모으기 위한 후원회라면 사시(斜視)로 볼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후원회 개최는 뭔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우선 창당하자마자 ‘돈타령’부터 하는 모습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치겠느냐는 지적이 당내에서도 나온다. 더구나 지금은 선거법 개악 협상 파동이다, 시민단체 낙선운동이다 해서 정치권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는 때가 아닌가.

민주당은 집권당이다. 집권당이 선거를 앞두고 후원회를 연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부담을 느낄 사람이 우리 사회에는 아직 많다. 지난해 국민회의 시절 국내 굴지의 재벌기업들이 앞다퉈 거액의 후원금을 낸 까닭, 그리고 그 행태가 과거 여당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국민은 잘 알고 있다.

민주당은 “후원회 여는 것을 문제삼는다면 정치자금을 뒤로 받으란 말이냐”고 항변한다. 형식논리상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얘기 또한 과거 정권 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얘기다. 특히 지금은 국정 운영의 최대 화두인 ‘재벌 개혁’과의 상관관계에 대입시켜 보면 흔쾌하게 이해되기보다는 “뭔가 앞뒤가 안 맞는 일 아닌가”하는 생각도 떨치기 힘들다.

지금 여당과 과거 여당은 자금사정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창당대회를 하자마자, 또 총선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집권당이 요란하게 후원회부터 여는 것은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현행법에는 후원회를 열지 않더라도, 은행 온라인 등을 통해서 얼마든지 후원금을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윤승모<정치부>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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