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담론]"유토피아는 진정 어디에"

  • 입력 2000년 1월 10일 19시 48분


평화 생명 통일 환경 정보화 인간 디지털…. 새천년을 연다는 올해는 이런 희망찬 말들의 범람과 함께 시작됐다. 연초부터 사람들을 잔뜩 긴장하게 만들었던 Y2K 문제마저 별 탈 없이 넘긴 인류는 다시 새천년에 이룩할 유토피아를 꿈꾼다.

레닌 히틀러 마오쩌둥 폴포트 호메이니…. 20세기에는 유난히도 현실에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 중에는 마오쩌둥처럼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며 현실세계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이상사회를 만들려 한 사람도 있었지만, 실제 그럴 만한 힘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상상력을 동원해 유토피아를 그려냈다. 이런 사람들의 희망을 담아 1968년 5월 시위에 나선 프랑스 학생들은 거리에서 외쳤다,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게로”.

▽유토피아와 대동사회=서양의 이상사회를 대표하는 것이 유토피아라면 동양에는 대동사회(大同社會)가 있다. 그곳에 부족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능력에 따른 자아실현과 사회화합의 과정이고, 분배는 필요에 따라 이뤄진다. 상부상조하는 그곳에서는 계급도 갈등도 착취도 전쟁도 없다.

사람들이 이런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은 현실에서 그 꿈을 실현할 통로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사회가 불안정할 때 나타나 ‘현실’ 너머에 이상적인 사회상으로 제시된다. 플라톤의 ‘아틀란티스’도,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도, 홍길동의 ‘율도국’ 도 당시 사회의 불안 속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현실을 극복할 실질적 능력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현실을 외면하고 이상향만을 꿈꿨다. 유토피아는 언제나 현실에 있되 현실과 단절돼 있었다.

▽20세기의 실험들=과학기술의 급속한 발달과 함께 20세기를 맞으며 사람들은 수 천 년 동안 꿈꿔왔던 유토피아를 드디어 인간의 힘으로 실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찼다. 그러나 이념과 의욕이 현실을 압도한 소련 독일 중국 캄보디아 등 유토피아 건설 현장에서 벌어진 자만심 가득한 인간의 실험은 오히려 학살과 전쟁을 일으키며 처참한 실패로 끝나곤 했다.

자본주의나 사회민주주의 등의 실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현명한 인간들은 20세기의 시행착오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세계화와 디지털 정보화, 그리고 유전공학의 발전 등이 결국에는 디스토피아라는 어두운 미래로 귀결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제 자연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제도와 과학기술문명이다.

▽존재하지 않는 곳=20세기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했던 경험은 인간에게 소중한 교훈을 남겨 줬다. 인간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줄 이상사회, 즉 맛있는 음식과 넓은 집과 귀족처럼 특권을 휘두르는 유토피아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그런 욕구를 채우려 할 때 지구상에는 아무도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유토피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u=not, topia=place)’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유토피아의 꿈을 버리지 않는다. 20세기의 경험은 유토피아에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한 ‘절제’와 ‘겸손’을 배우는 뼈아픈 과정이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오늘도 순수하고 무한한 ‘상상력’에 모든 ‘권력’이 부여될 날을 꿈꾼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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