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출판통신/보스턴]이영준/'평벙한 것들을 위하여'

  • 입력 2000년 1월 8일 0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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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것들을 위하여(For Common Things)/제데다이아 퍼디 지음/크노프▼

미국의 적지 않은 부모들이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있다는 것은 제법 알려진 사실이다. ‘홈 스쿨링’ 이라고 불리는 이런 교육방법을 택한 부모들은 현재의 제도교육이 자녀의 바람직한 성장을 돕는 게 아니라 오히려 창의력과 사고력을 박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해 가을 발간돼 호평을 받았고 지식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있는 이 책은 그런 맥락에서 주목받을 만하다.

스물 네살의 대학원생인 지은이 퍼디는 애팔래치아 산맥 자락인 버지니아주의 산간지대에서 태어나 열네살이 되기까지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작은 규모의 농장을 꾸려가며 ‘건강하게’ 살기 위해 도시에서 산골로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숙제도 없고 학습계획표도 없었고 당연히 ‘학년’도 없었다. 오로지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산과 들로 뛰어 다니고 가축들을 돌보았다. 때로 책을 보고 모르는 건 부모에게 물었다.

열네살이 되어 처음으로 학교라는 곳에 갔을 때 저자는, 홈 스쿨링을 받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토로하듯, 그 고등학교에서 배울 것이 너무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 후 환경운동이라든지 지역사회의 사회활동에 참여하면서 미국사회와 현대문명에 대해 생각한 것을 하버드에서의 대학생활과 예일에서의 대학원 공부를 통해 정리하고 써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자신이 속한 장소, 그 공동체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 책을 썼다고 말하는 저자는 19세기말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와 랠프 왈도 에머슨의 사상에 기대어 인간성 회복을 주창한다. 그가 보기에 현재 미국사회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신뢰감을 상실한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타인은 물론 자신에 대해서마저 극히 냉소적이라고 평한다.

저자의 구체적 비판은 컴퓨터문화의 대표적 잡지 ‘와이어드(Wired)’와 지난 몇 년간 미국을 뒤흔든 TV시트콤 ‘사인펠드(Seinfeld)’에 집중된다. 컴퓨터 문화는 공허한 환상만 줄 뿐 삶의 구체적 의미에 대해 너무나도 냉담하다, ‘사인펠드’에서 뉴욕 젊은이들은 매사를 빈정거리면서도 자기 몫은 결코 양보하지 않는 극히 이기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그들에게 진지한 신념이나 사상은 모두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짜맞춰진 것으로 여겨지며 우스갯거리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이른바 다트컴(.com)족,그리고 ‘사인펠드’의 뉴요커와 동세대지만 저자는 버지니아 주 산간마을에서 체험한 공동체적 신뢰감을 미국사회가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너무나 평범한 얘기지만 그 깊은 평범을 현대문명이 싸늘하게 배신하고 있다는 게 이 책의 단순하고도 건강한 주장이다.

이영준 (하버드대 동아시아 지역학과 대학원·전 민음사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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