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막가는 사회

  • 입력 1999년 12월 14일 19시 39분


그저께 저녁 TV뉴스는 우리 사회의 참담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파업유도의혹사건을 수사중인 강원일(姜原一)특별검사가 면담차 찾아간 민주노총 간부들의 폭언과 삿대질 앞에 무참히 당하고 있었다. 주위에서는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강특검은 곤혹스러운 표정만 짓고 있었다. 같은날 국회에서는 법안처리 문제를 둘러싸고 국민회의 의원이 한나라당 여성의원에게 “싸가지없는 ×.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라는 폭언을 퍼부었다는 보도다. 우리 사회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회 구석구석이 모두 그 모양인데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냐고 되물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딴은 그렇기도 하다. 아들이 아버지를, 학부모나 학생이 선생님을 마구 해코지하는 세상이 아니던가. 그렇더라도 우리 사회가 왜 이토록 막되어 가는지 되 묻지 않을 수 없다. 국회의원은 물론 민주노총 간부들도 노동자를 대표하는 일종의 공인(公人)이다. 평범한 개인간에도 그럴진대 하물며 공인의 입장에 있는 그들이 폭언을 앞세운 것은 한심하고 몰상식한 작태다. 특검의 수사방향이 설사 잘못됐다 하더라도 “×××아. 네가 특검이냐. 이 정도는 나도 하겠다” “역사의 죄인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폭언은 용서받을 수 없다.

민주노총은 조폐공사의 파업유도에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런 의혹은 있을 수 있다. 또한 자신들의 주장을 특검에게 전달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아직 최종 결론을 내지 않은 특검 수사에 축소의혹이 있다고 단정해 특검을 모욕한 것은 독선이 아닐 수 없다. 특검은 정치적 외압으로부터는 물론 어떤 사회집단으로부터도 철저한 독립을 유지해야 한다. 공정한 수사를 위해서다. 민주노총 간부들의 행동은 자신들의 주장이 수사결과에 반영되지 않을 경우 그냥 두지 않겠다는 협박이나 다름없다.

그들의 행동은 준(準)국가기관의 역할과 권위를 부정하는 것으로서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될 사안이다. 이런 식으로 상식과 법질서의 근간이 무너진다면 우리 사회는 설 땅이 없어진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는 가치관의 혼돈으로 국가와 사회기강이 급속히 붕괴되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툭 하면 벌어지는 국회의원간의 폭언시비도 범상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얼마전에도 광주 광(光)산업단지 예산배정과 관련해 여야의원간에 지역감정까지 가세한 폭언시비가 일었었다. 이른바 선량(選良)들의 말과 행동은 국민에게 교육적 기능도 갖고 있다는 점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 폭언이 난무하는 ‘막가는 사회’에 밝은 미래가 약속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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