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거꾸로 가는 '레드존'

  • 입력 1999년 11월 14일 18시 50분


인천 호프집 화재 참사는 우리 청소년 문제의 현 주소를 매우 압축적이고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고교생들이 술집이라도 찾아가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 만큼 우리 교육여건은 청소년들을 옥죄고 있다. 기성세대의 책임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문제의 호프집 업주는 청소년 대상 술집을 마치 체인점처럼 여러 곳 운영하고 있었다고 한다. 기성세대들이 청소년을 돈벌이 대상으로 삼아 유해환경에 끌어들이고 있음이 이번 참사를 통해 확인됐다.

이번 사고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기성세대들이 청소년 보호를 위해 얼마만큼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청소년들의 일탈행동을 막고 바르게 이끄는 것은 단지 교사와 학교만의 책무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래의 주인공인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기본 자세와 철학마저도 잊고 사는 게 아닌지 회의가 생긴다. 이번 사고 이외에 또다른 사례가 있다. 청소년통행금지구역(레드존)문제다.

청소년통행금지 구역은 전국적으로 67곳이 지정된 바 있다. 유흥업소 윤락가가 밀집해 미성년자들이 들어가서는 안되는 곳이다. 이 가운데 얼마전까지 12개소가 해제됐고 15개소가 ‘통행금지’에서 ‘통행제한’ 구역으로 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통행금지 구역으로 계속 남아 있는 곳은 40개소밖에 되지 않는다. 지난 7월 경찰로부터 구역지정권과 감독권을 넘겨받은 지방자치단체들은 해제 이유를 ‘지정 당시보다 유흥가나 윤락가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영업이 안된다는 상인들의 반발을 지자체가 수용한 것이 주된 배경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유흥업소들이 주택가나 학교 바로 앞까지 들어와 있다. 외국의 예를 살펴보아도 우리처럼 유흥업소들이 도시 곳곳에 폭넓게 퍼져 있는 나라는 없다. 한마디로 ‘유흥업소 천국’이다. 청소년에게 유해한 업소들이 도처에 늘어서 있다는 얘기다. 이런 마당에 지자체의 경제논리에 따라 레드존까지 하나 둘씩 사라진다면 머지않아 ‘청소년들이 가장 술집에 드나들기 쉬운 국가’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게 뻔하다.

선진국들은 갖가지 아이디어로 청소년을 유해환경으로부터 차단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의 어떤 도시는 밤 10시 이후 청소년들을 집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통행금지 제도를 실시하고 있고 일본의 경우 유흥업소를 도시의 한 구역에 집중시키는 블록화 정책을 쓴 지 오래다. 이런 획기적인 발상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 한 우리의 청소년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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