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국가이미지 먹칠한 '참사'

  • 입력 1999년 10월 31일 19시 59분


55명의 사망자를 낸 ‘인천호프집 화재참사’는 해외에서도 한국의 이미지에 다시 한번 먹칠을 했다.

아사히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유력일간지는 31일자 조간에 참사소식을 1면 주요기사로 다루고 사회면에까지 상세히 보도했다. 구조된 젊은 여성의 사진과 한국지도도 크게 실렸다.

NHK방송은 사고 직후부터 현장화면과 함께 매시간 주요뉴스로 다뤘다. 31일에도 계속 속보를 전했다.

이때문에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은 사고소식이 전해진 뒤 고개를 들고 다니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기자도 일본 지인들로부터 “한국에서 큰 사고가 있었던데 아는 사람 중에 피해자가 없는가” “어떻게 한국 정도 되는 나라에서 그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시달렸다. 자격지심인지는 모르지만 “당신 나라는 이런 ‘원시적 사고’가 아직도 일어나는 후진국인가”라는 비아냥으로까지 들렸다.

일본에서도 사고는 일어난다. 최근 이바라키(茨城)현 도카이무라(東海村)의 핵연료가공공장에서 방사선누출사고가 발생했고, 신칸센(新幹線)의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사실도 밝혀졌다. 일본의 ‘안전신화(神話)’가 무너지고 있음을 개탄하는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기자가 3년 가까이 특파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일본에서 화재사고로 10명 이상이 숨진 적은 없었다. 지난달 29일 도쿄(東京)의 한 고속도로에서 과산화수소를 실은 차량이 폭발해 일본언론이 대서특필하는 등 소동이 벌어졌지만 피해자는 부상자 20여명이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항공기 추락사고, 종교계의 폭력충돌 등에 이어 인천참사가 발생함으로써 한국의 안전에 대한 일본인의 생각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들이 한국을 ‘사고공화국’으로 부른다 해도 이제는 반박할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도쿄=권순활특파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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