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레드 바이올린'

  • 입력 1999년 10월 28일 21시 26분


손때 묻은 집안의 작은 물건에도 한때 그것을 간직했던 사람들의 사연과 역사가 녹아 있다. 17세기에 만들어져 3세기를 거쳐온 명품 악기라면 오죽하랴.

‘레드 바이올린’은 불후의 명품인 한 바이올린이 3세기를 흘러오며 수많은 사람들과 운명을 함께 했던 사연을 그린 영화다. 허구이지만 역사의 격랑과 악기를 스쳐간 사람들의 자취를 생각하게 한다.

당대의 명인인 니콜로 부조티가 죽은 아내 안나에 대한 애정과 절절한 사랑을 담아 만든 레드 바이올린은 비천한 집안 출신으로 요절한 천재 소년을 거쳐 집시의 손에 넘어간다. 이 바이올린은 천재 음악가에게 영감을 주는 판타지의 도구로 사용되는가 하면, 20세기 문화혁명의 물결에 휩싸인 중국에서는 ‘자본주의의 꽃’으로 단죄당하기도 한다. 기나긴 여행 끝에 이 명품은 진정 바이올린을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안착한다.

기복 없이 흘러가는 듯한 이야기는 다소 밋밋한 느낌을 주지만 ‘엄청난 고통을 겪은 뒤 다시 태어난다’는 안나의 점괘와 레드 바이올린의 운명을 결합한 구성은 재치있다.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지는 레드 바이올린의 완벽한 공명의 비밀은 예술이 불멸의 사랑을 이루는 한 방법일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클래식 음악 팬이라면 존 코리질리아노가 작곡하고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연주한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2시간10분의 상영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감독은 첼리스트 요요마에 대한 단편 영화 등 주로 음악영화를 만들어온 캐나다의 프랑수아 지라르. 11월6일 개봉. 18세이상 관람가.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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