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내가 본 이승엽]왕정치감독-요시무라기자

  • 입력 1999년 10월 7일 23시 31분


《끝내 이승엽의 홈런은 54개에서 멈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승엽의 54개홈런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승엽은 여전히 세계가 주목하는 홈런킹. 더구나 그는 아직 젊다. 일본언론에서 보는 이승엽은 어떤 모습일까. 또한 홈런 55개로 아시아신기록 보유자인 왕정치는 이승엽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

★아사히신문 운동부 요시무라 기자

시드니올림픽 예선을 겸해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때다. 이승엽은 일본 대표팀이 서울에 들어가기 전부터 화제의 표적이 됐다.

비디오로 그의 타격폼을 연구한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포수 후루타 아쓰야는 “엄청난 파워다. 마쓰이급이다”라고 말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괴물 외야수 마쓰이 히데키는 올해 일본인으로서는 10년만에 40홈런을 넘겼다.

이승엽은 일본TV의 스포츠뉴스에서도 소개됐다. 나 자신도 그의 모습을 TV에서 처음 봤다. 홈런을 치는 모습은 역시 박력이 있었다. ‘파워가 있는 1루수’라고 해서 좀 뚱뚱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날씬했다.

일본 퍼시픽리그에서 5년연속 수위타자를 독식하고 있는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외야수 이치로에 빗대 ‘한국의 이치로’라고 불린다고 들었다. 그러나 타격폼을 보니 이치로의 ‘진자(振子)타법(시계추처럼 타격 타이밍을 잡는다)’과는 달랐다. 차라리 요미우리 3번타자 다카하시 요시노부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본 대표팀 기록원으로 한국선수들을 집중 분석했던 야쿠르트의 야스다 다케시도 대회전부터 “이승엽을 경계해야 한다. 섣부른 공은 스탠드로 넘어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기술적으로 일본 톱레벨의 타자가 한수위”라며 약점을 지적했다.

이승엽의 약점은 백스윙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방망이가 멀리 돌기 때문에 스윙을 시작해서 공을 칠 때까지의 시간이 길어 구질을 구별하는데 불리하다는 것이었다.

야스다는 “가슴 안쪽의 직구나 변화구의 스피드변화에 약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일부 언론은 이승엽이 “앞으로 일본에서 야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하고 있다. 일본투수는 파워있는 타자와 ‘직구로 정면승부’는 하지 않는다. 완급을 조절해서 안쪽 바깥쪽을 골라 던진다.

만약 그가 일본에서 플레이를 하게 된다면 이런 데에 익숙할 필요가 있다. 아직 젊은데다 소질도 있고 성실한 성격이라고 듣고 있다. 타격폼의 약점만 고치면 일본에서도 대활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이에 호크스 왕정치 감독

이승엽의 거침없는 홈런레이스에 가장 뜨거운 눈길을 보내고 있는 사람은 일본프로야구 다이에 호크스의 왕정치감독(59)일 것이다. 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인 64년 한 시즌 55홈런의 아시아 최고기록을 세웠다.

“홈런은 자신과의 싸움이죠. 따라서 얼마든지 기록을 쌓아올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올해에 안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60호까지 때려 줬으면 좋겠어요.”

왕감독은 시드니올림픽 예선을 겸했던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이승엽을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9월16일 한국과 대만의 경기.

왕감독은 “왼쪽으로 밀어쳐 홈런을 때렸죠. 역시 ‘물건’ 아닙니까”라고 6회 이승엽의 홈런을 인상깊게 얘기했다. 이승엽은 ‘한국의 이치로’라는 별명으로 불리지만 왕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장타력은 이치로가 따라갈 수가 없어요. 경기의 흐름을 순식간에 바꿀 능력이 있다는 거죠”라고 큰 스케일을 높게 평가한다. 역시 ‘라이언 킹’이라는 애칭이 딱 들어맞는다.

23세라는 나이에 대해선 “물이 올랐다기보다도 겁날 게 없는 기세를 타고 있는 시기라고 본다. 내가 55호 홈런을 때렸을 때도 24세였다. 정말로 힘든 것은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며 자신이 걸어온 길과 비교했다.

왕감독은 자신의 기록을 이승엽이 깬다 해도 전혀 서운하지 않다. “같은 시기에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현역에서 물러나 있다. 오히려 더 노력해 줬으면 좋겠다”고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후쿠오카〓후지시마 마사토(등도진인) 아사히신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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