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사종/'文化民國'의 출발

  • 입력 1999년 9월 20일 19시 42분


지난주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가시적 변화를 예측하게 하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번째는 페리보고서다. 미국의 대북한 정책의 향배를 담은 이 보고서의 주된 의제는 북한 문제를 대립과 고립보다 협상을 통해 해결한다는 포용정책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임기중에 냉전구조를 해체하겠다고 선언하고 있으니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에 대한 기반조성의 근간이 마련된 것이다.

▼예산 1%반영 확정▼

페리보고서처럼 세계의 뜨거운 관심이 쏠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미래 한국의 또 다른 모습을 예측하게 한 변화가 있었다면 문화예산을 1% 반영한 정부예산 확정안이 아닐까 한다. 페리보고서가 외교안보적 한반도의 미래 변화를 그려낸 것이라면 문화예산 1%는 문화한국의 자신감을 경제적 관점에서 보여준 사건이다. 국민의 정부가 지식기반 사회에서 문화예술의 창의성과 감성이 경제적 가치를 배가할 수 있는 요소임을 충분히 인식한 결과라고 믿고 싶다.

어떤 이는 대통령선거 공약사항이기 때문에 당연히 지켜야 할 약속이라고 폄훼하기도 한다. 또 실업대책 등 산적한 민생분야에 우선적으로 투자돼야 할 예산이 비생산적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분야에 지나치게 많이 흘러들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우는 시대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못읽고 있는 것이다.

60, 70년대 중화학공업을 국책산업으로 삼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도로 항만 등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투자를 거듭하던 산업화시대의 경제학 이론은 정보화시대인 오늘날 부가가치 측면에서 새롭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비근한 예를 들면 녹음용 공테이프의 생산 원가는 600원이다. 여기에 이윤 300원을 붙여 900원에 판다고 하자. 이 테이프를 생산해내기 위해서는 노동집약이 요구되고 많은 자본의 투자가 필요하다. 이뿐인가. 공장을 지을 부지 즉 토지에 대한 지대(地代)가 지불되어야 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생산의 3요소, 노동 자본 토지가 결합하여 창출해낸 것이 공테이프 1개당 부가가치 300원이다.

그런데 이 테이프에 바리톤 최현수의 노래를 담아 판매한다고 가정해 보자. 시중에서 팔리는 최현수의 노래 테이프는 1개에 5000원 정도. 공테이프 값으로 1000원을 뺀다고 해도 4000원이 고스란히 이윤으로 남는다.

소위 경제학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주장하는 생산요소적 관점에서 볼 때 최현수의 노래는 노동의 산물로 보기 어렵다. 노동의 대가인 임금이라면 음치인 나의 노래도 같은 값에 팔려야 될 것 아닌가. 또한 자본도 아니다. 그의 재능 값은 희소성에 따라 지대의 가치가 달라지는 토지와 비슷한 속성을 지니지만 부지가 있는 공장에서 창출해낸 값도 아니다.

▼21세기 이끌 원동력▼

이처럼 지금까지의 경제이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부가가치를 이제 문화가 창출해내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정부당국이 21세기 첫해에 문화예산 1%를 배정한 것을 보면 뒤늦게나마 지식과 문화가 생산의 가장 강력한 엔진이고 미래사회에서 문화는 국가생산력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한 것같다.

고임금과 저자본, 그리고 비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지식기반사회의 총아인 정보와 문화에 대해 이 정도나마 투자하지 않으면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미래는 막막하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에 대한 투자가 곧 경제에 대한 투자이고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프랑수아 미테랑 전프랑스 대통령의 말은 우리에게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이 아닐까 한다.

이제 문화한국의 자신감을 상징적으로 예시한 문화예산 1%의 정부안이 국회에서 심의될 예정이라고 한다. 심의에 앞서 여야 의원님들께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문화예산이 산업화 시대의 경제우선 논리에 밀려 곁가지 예산으로 다루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경제학을 다시 써야 하는 시대에 문화예산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새삼스럽게 부연설명해서 무엇하랴.

또 한가지 더 요구할 것이 있다면 문화예산이야말로 온 국민의 미래가 담겨있는 꿈의 예산임을 직시해 달라는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사람들은 꿈을 사려고 한다. 꿈의 예산 1%에 대한 기대가 창출해내는 무형적 부가가치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아달라는 뜻이다. 꿈이 있어야 나라도 산다.

홍사종<정동극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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